선장 독점적 책임 물어…선원들 형량 감경 ● 1심과 달라진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 승객구조 법률·사실상 유일한 권한 누구도 대신 불가 나머지 선원 복종 의무, 건강상태, 근무기간 등 고려 대형 참사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인정 첫 사례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

2015년 04월 28일(화) 20:16

선고 기다리는 승무원들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이 28일 오전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 가운데 이준석 선장(왼쪽) 등이 선고가 내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주고법 제5형사부는 300여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이준석 선장을 지목했다. 이에 1심에서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는 판단과는 달리 이 선장이 탈출당시까지 선내 퇴선방송이 없었고, 많은 승객이 구호를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퇴선한 책임을 크게 물어 살인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선장의 퇴선명령 지시가 없었다는 근거로 네 가지를 들었다. 이는 선장과 선원들이 세월호를 탈출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승객들에 대해 선내 대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는 점, 퇴선방송 지시에 수반되는 조치가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퇴선방송 지시했다는 이 선장 등 일부 세월호 승무원들의 진술은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점이다.

또 사고 당일 오전 9시37께 진도 VTS와 교신에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만 탈출 시도하는 방송은 퇴선명령과 부합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이 선장의 살인죄를 적용하기 위한 가장 큰 근거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들었다.

이 선장은 세월호 사고 당시 승객 등의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를 결정할 수 있는 법률상·사실상 유일한 권한을 지닌 자로 누구도 대신 이행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해사안전법, 선원법 등 국내 법률은 선장에게 선박의 안전과 인명 구조를 위해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골든타임을 진도VTS에 구조를 요청한 오전 8시55분부터 세월호 승무원들이 구명보트에 오른 오전 9시37분까지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선장은 ‘골든타임’에 구조작업이나 승객 안전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본분의 임무를 망각했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더구나 움직이지 말고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선내 있는 400여명의 승객이 익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먼저 퇴선한 죄를 크게 물었다.

또 퇴선 후에도 승객 구조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해경정 선실로 들어가 버렸고, 팽목항에 도착해 진도에 있는 병원에서도 신원이 밝혀질때까지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이 선장의 행태를 ▲고층 빌딩 화재 현장에 구조를 위해 출동한 소방대장이 빌딩 안의 승객들 구조를 외면한 채 옥상의 구조를 타고 먼저 탈출한 행위 ▲야간 병원 응급실을 지키던 유일한 당직의사가 위독한 환자를 방치하고 병원에 빠져나온 행위와 동일하다고 밝혔다.

이에 구호조치 포기, 승객들 방치 및 퇴선행위는 살인의 실행행위와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에 반면 나머지 간부선원들과 세월호 승무원들은 독점적인 권한을 지닌 선장과는 달리 우월적 지위에 놓여있는 선장에 대한 복종 의무가 있고 근무 경력, 건강 상태 등을 비춰 대부분 형량이 감경됐다.

이를 지켜봤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 선장에 대한 살인죄 판결은 인정하면서도 나머지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형량은 미흡하다는 평가가 다수를 차지했다.

한편, 이번 판결은 대형 인명사고와 관련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된 첫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과정에서 이 선장처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에 의한 범죄를 인정한 사례는 1978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아닌 부작위에 의한 폭발물파열죄가 적용됐다.

1970년 ‘남영호 침몰’ 때도 검찰은 선장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했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죄만 인정됐다.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