傷痕 속에 투영된 아픈 현실…역경 속에서 스러지지 않는 신념은 아름다워라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42> 베트남 호치민과 ‘목민심서 ’ kjdaily.com

2015년 04월 29일(수) 21:10

박종석 作 ‘하롱베이 동굴 투어’

호치민 기념관에서…

다음날 국경을 넘기 위해 메콩강 근처 소도시를 걸어서 시골 장터를 지난다. 우리의 5일장처럼 좌판과 시장바닥에는 독특한 농수산물이 즐비하다.

푸른 연(蓮)씨를 팔기도 하고, 또 이름 모를 새들을 팔기도 하는데 아열대의 햇볕에 그을린 중년 농부가 10마리 정도의 뜸부기들의 다리들을 묶어서 팔려나가길 기다린다. 그 뜸부기들이 무더기로 누워있는 상황이라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그 와중에도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을 깜박거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속물근성이 발동해 마음 속으로 생각하길 ‘저걸 먹으면 보신이 꽤 될텐데…’라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을 부린다. 이 생각을 옆 동료들에게 말하고 지나쳤더니, 이후 사람은 같은 대상을 보고도 다른 시각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실제로 일행 중 어떤 분이 말하기를 “저는 그것을 사서 다 놓아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음에 따라 대상을 보고 느끼는 결과가 이렇게 상반되는가 싶었다.

‘하노이 문묘문’

그 뜸부기들은 농부의 생계를 위해 팔려가겠지만 곧바로 희생을 수반해야 한다.

평화로운 시골 들녘, 오염되지 않은 땅이기에 새들과 짐승들의 천국이다. 그 시간 자책을 느끼면서도 파고드는 생각은, 세상은 고통의 바다라 하지만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냉혹한 현실로 가끔은 진실 때문에 끝없이 배반당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많다는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정글의 살육전이 벌여졌던 월남전은 곧 강자의 교만함에서 비롯돼 결국 서로의 상처만 남겼지만, 그래도 베트남 건국의 영웅 호치민(Lang Chu Tich Hochiminh)의 청빈과 인고를 감내한 민족의 지도자가 있었기에 강한 나라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런데 호치민(胡志明)박물관 관람 중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호지명의 필독서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였음을 알게 됐다. 러시아 국제레닌학교에서 호지명과 함께 공부한 비운의 혁명가 박헌영이 선물했던 것이 ‘목민심서’였다고 한다.

‘호이안 강변’

여행으로 방문 했지만 과거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상처를 남긴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다산 선생의 사상이 전달된 것에 대해 자긍심도 생긴다. 북부 국경에서부터 긴 여정을 따라 최남단까지 베트남 서민들의 강인한 삶을 느낀다.

보름 간의 베트남 전역의 여행을 마치고 5월1일 아침 8시에 사이공을 떠나 5시간동안 차로 질주한다.

밀림 깊숙이 들어가 아담하게 자리 잡은 수상식당에서 식사 후 미국과 베트남의 정글 전투가 치열하기로 유명한 이 곳 수로를 쪽배에 의지해 견학한다. 전쟁시 공산당 1인자 및 2인자들의 숙소와 벙커 집회장소 등도 둘러보고 오후 6시에 캄보디아가 보이는 차우독 마을에 도착했다.

드넓은 벌판에 유일하게 서 있는 260m인 삼(參)마운틴에 올라 베트남과 너무 비교되는 캄보디아의 땅을 굽어보며 저 멀리 풍요로운 아열대의 야자수 밭과 삶의 터전인 논 답들의 물빛을 바라보며 하루를 갈무리한다. 잔잔한 노을에 물든 국경 마을의 고즈넉한 삶터의 정취를 한껏 만끽한다.

‘후에 왕궁 앞에서’

세계 근대 전쟁사에서 슬픈 고뇌를 극복하며 수렁에도 물이 들어가지 않게 무장한 갈고리(長靴) 같은 지형을 형성한 나라이자 강국을 물리친 자존심의 국민들을 뒤로 하며 메콩강의 황토색 물 위로 스피드 보트를 타고 캄보디아 국경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