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완도를 음악의 쉼터로 만들고 싶어요” 광주서 활동했던 작곡가 이준희씨 완도서 ‘제2 음악인생’ 열어 지역 첫 라이브클럽 ‘곡스’ 10여년 운영하다 폐업 후 완도行 해변공원·수목원·청산도 일대서 다양한 음악축제 열어 성황 “대중음악문화 새바람 일으킬 것” 내년부턴 음악공간 조성도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5년 05월 04일(월) 19:51

“완도라는 크나큰 섬 일대를 ‘대중음악의 쉼터’로 만들고 싶어요. 광주에서 완성하지 못했던 꿈을 이제 완도에서 펼치려 합니다.”



20년 전 광주지역 음악공연계를 쥐락펴락했던 한 인물이 있다. 지난 1998년부터 광주 충장로 한복판에서 라이브클럽 ‘곡스’를 운영하며 전국의 많은 음악인들을 광주에 소개해 인기를 끌었던 작곡가 이준희(54)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렇다할 대중음악 전문공연장이 거의 없던 시절, 그는 유일한 대중음악의 지역 매개체이기도 했다. 해서 2000년대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곡스’에 열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었다.

당시 ‘곡스’에선 재즈, 락, 펑키를 비롯해 일렉트로닉, 테크노, 크로스오버까지 장르를 초월한 무경계 음악이 매일 울려 퍼졌다. 블랙홀과 봄여름가을겨울, 델리스파이스, 크라잉넛, 노브레인, 레이지본, 나비효과 등 유명 밴드들이 무대에 섰다. 더불어 락페스티벌, 크리스마스 이브공연 등 여러 자체기획행사도 올렸다. 자연스러운 축제가 열리는 경쾌한 대안문화공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댄스클럽에 밀리고 대형공연장에 눌리면서 불황이 이어졌다. 충장로에서 조선대 인근 동명동으로, 또 사직공원 옆으로 잇따라 ‘곡스’ 둥지를 옮겨가며 ‘지역 첫 라이브클럽’이란 명성을 이어갔지만 2010년 이씨는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버틸만큼 버티다 결국 폐업하게 됐는데, 정말이지 자식 잃는 심정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건 라이브클럽이 인디밴드만의 무대라는 편견에 맞설 때였어요. 말 그대로 생음악을 하는 곳인데도, 사람들은 락이나 인디음악만을 취급하는 곳으로 오인했죠. 자꾸 좁은 무대로 변질됐고, 결국 문을 닫았어요.”

이후 이씨는 방황 아닌 방황을 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나 쐴 겸 완도바다를 찾았고, 그 아름다운 대자연 풍광에 반해 이씨는 단번에 완도로 거처로 옮겼다. 그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곡스 문을 닫고 상실감이 너무 커 완도로 바다여행을 떠났는데, 밤하늘 별들이 부딪치는 소리도 날만큼 청정한 바다 품이 너무 포근했어요. ‘아! 이런 바닷가에 살면서 음악에 대한 제2의 인생을 꿈꿔보고 싶다’는 소망이 스멀스멀 생기더군요. 그래서 미련없이 바로 귀촌했죠.”

당장 쉬고 싶어서, 자연속에 파묻히고 싶어 완도로 귀촌했지만, 전국의 선·후배 음악인들이 날을 바꿔 계속 찾아왔다. 완도에서 곡스 같은 음악둥지를 만들라고, 그들은 계속 채근했다.

힘을 얻은 그는 2010년 중순부터 완도의 해변과 수목원 등에서 크고 작은 공연들을 열어 대중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완도에 이색 바람을 일으켜왔다.

실제로 2010년 11월 완도 수목원의 숲해설가 과정을 수료하기도 한 그는 당시 수목원에서 잔잔한 작은 음악회를 열어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해 10월엔 서울 홍대 거리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완도 해변공연에서 트럭을 타고 콘서트를 여는 공연을 기획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5년여 세월 동안 완도사람이 다 된 이씨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벌이기로 작정도 했다. 완도 일대를 대중음악 문화로 물들여보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집어든 것.

그는 먼저 ‘2015 완도해변공원 함께 나누는 음악이야기’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완도군과 함께 하는 이 공연은 지난달부터 오는 10월까지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 오후 7시부터 밤 8시30분까지 완도읍 완도해변공원 야외무대에서 진행된다. 완도 군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음악적 휴식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기획된 이 공연에선 락이나 밴드음악에서부터 트로트, 댄스 등 대중음악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 11월 마지막 공연 땐 관객과 음악인 모두 참여하는 파티 형식의 음악회도 꾸며볼 요량이다.

앞서 이씨는 지난달 25일 밤 청산항 야외무대에서 포크페스티벌을 열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달 내내 슬로우걷기축제로 인산인해를 이룬 청산도에서 이날 밤 서정적인 음악축제가 열린 셈이다.

KBS라디오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진행자이자 ‘사랑의 썰물’로 유명한 가수 임지훈, ‘빙빙빙’의 하성관, 서울과 대전에서 활동 중인 포크트리오 ‘프리버드’ 등이 이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감미로운 음악들을 들려줬다. 이외에도 이장희, 김광석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도 선보여 관객들이 하나 돼 열창하기도 했다.

이씨는 또 장보고수산물축제(5월1-9일)의 일환으로 5일 락페스티벌을 열고, 유명 락밴드 ‘노브레인’ 등을 초청해 공연할 예정이다.

“완도가 이젠 제게 삶도, 꿈도 이룰 제2의 둥지가 됐어요. 완도 무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중음악을 선보이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다행히도 전국 각지의 음악인들이 찾아와 도와주고 함께 해주니 자신감이 생깁니다. 올해 다양한 공연을 기획해 매년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구축해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완도에 아담한 음악쉼터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내년부터 건물 공사에 돌입해요.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들으러 완도를 찾는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거예요.”/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