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하루하루가 5·18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오월 광주의 어머니들<2>추혜성씨 5·18 당시 시민군 활동 남편 고문 후유증 평생 시달려 어머니집·트라우마센터 도움 가족들 고통 극복 큰 힘 주재홍 기자 jujae84@kjdaily.com

2015년 05월 04일(월) 20:48

“5·18로 우리 부부, 자식들까지 고통 받았지만 슬기롭게 이겨냈습니다. 만약 다시 35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시 감싸 안겠습니다.”

최근 ‘광주 오월 어머니집’에서 만난 추혜성(58·여)씨는 고난의 세월을 담담히 얘기하면서도 35년 전의 고통을 되뇌이자 불현듯 당시로 돌아가는 듯 했다.

추씨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자 광주시 북구 임동에서 시민군, 학생들에게 주먹밥과 음료를 나눠주는 일로 5·18 항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5·18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남편을 1984년 소개 받았을 때도 그때의 고통, 고난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에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추씨의 남편은 1980년 5월21일 전춘심(65·80년 당시 가두방송 활동)씨가 리어카에 희생자를 싣고 가두방송하는 모습에 울분을 삭일 수 없어 시민군에 가담했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큰 부상을 입고 군부대에 구금됐다. 몸이 성치 않음에도 상무대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남편의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추씨는 남편이 1985년 결혼과 함께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혀져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씨의 소망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남편의 질환 발생으로 부서졌다. 남편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돼 더욱 폭력적 성향을 띠게 됐고, 가족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 남편의 질환과 폭력에 경찰서와 병원을 드나들기를 10여년. 자신은 남편을 이해하고 살 수 있어도 자식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감내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서 온 가족이 극도로 지치게 됐고 혼자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 때 큰 도움을 준 단체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던 ‘오월어머니집’ 회원들과 트라우마센터 프로그램이었다.

오월어머니집에 모인 어머니들은 각자가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슬픔을 나누며 마음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줬다. 트라우마센터에서 막 시작된 5·18치유 1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온 가족이 치료를 받았다.

두 단체에서 받은 도움은 가족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노출해 치료하는 방법이 효과를 본 것이다.

요즘은 남편의 병도 호전되고 가족들이 안정을 되찾자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에 힘쓰고 있다.

추씨는 “5·18희생자 가족들은 가슴에 묻고 35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우리 가족은 35년 하루하루가 5·18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살았다”며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가족끼리 부대끼며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들은 5·18이후 내 삶이 희생으로만 점철된 삶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고통스러운 길을 알면서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다시 35년 전으로 돌아가 선택에 기로에 선다고 해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고 어머니의 미소로 답했다./주재홍 기자 jujae84@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