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이도 이제 편히 눈감았으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오월 광주의 어머니들 <6>임근단씨 남편 대신하던 큰아들 80년 5월 하늘로 보내 폭도 누명 벗기려 투쟁 83년 시위중 구금되기도 주재홍 기자 jujae84@kjdaily.com

2015년 05월 11일(월) 20:39

“아들이 떠나든 그 날 난 나이 50에 핏덩이 딸을 얻었제.”

5·18 35주년을 일주일 앞둔 임근단(84)씨는 만감이 교차하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5·18을 회상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광주에 공수부대가 들어온 80년 5월 18일 금남로 거리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처남을 터미널에서 배웅하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던 고(故) 김경철(당시 29세)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공수부대원들에게 끌려갔다. 어릴 적 청각을 잃어 군인의 지시를 들을 수 없었던 김씨는 무차별 구타를 당해 끝내 숨졌다.

그날 밤 아들 경철씨가 집에 안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패닉 상태에 빠진 임씨는 상무대와 병원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러기를 7시간여, 다음날 새벽 2시께 국군병원 차가운 영안실에서 아들을 찾았다.

경철씨는 당시 14년간 홀로 3남3녀를 키우며 고생한 어머니께 효도를 하기 위해 양화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일 밤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제는 호강시켜 드리겠다”며 약속 손도장을 찍던 김씨는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고, 갓 100일이 지난 손녀를 어머니께 안겨드릴 수밖에 없었다. 임씨는 “36살 때 우리 아저씨를 보내 블고 50살 때는 경철이를 잃어부렀제”라며 “남편을 보내불 때는 냄겨논 자식들 생각에 눈 부릅뜨고 아들을 잃었을 땐 손주 땜시 이를 악물었제”라고 애써 담담한 척했다.

이후 임씨는 아들이 폭도가 아니었음을 밝히기 위해 손녀를 등에 업고 기약 없는 투쟁에 나섰다. 손녀는 ‘할머니’라는 말보다 ‘엄마’라는 말을 먼저 배웠다. 임씨 손에 자라던 손녀는 할머니를 ‘엄마, 엄마’ 하며 따랐다.

주위 사람들은 반백 할머니가 된 임씨에게 엄마라 부르는 아이가 신기해 자꾸 물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늦둥이 딸이라고 말하며 먼저 간 아들을 키우듯 손녀를 ‘딸’처럼 키웠다.

그렇게 35년간 아들을 가슴에 묻었지만 아들이 남기고 간 ‘딸’을 얻었기에 임씨는 버틸 수 있었다. 몇 년 전 딸(손녀)을 시집보내며 임씨는 아들 생각에 하염없이 울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22년 전 꿈속에서 아들과 약속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들이 떠나고 3년이 지난 83년 5월 18일에도 임씨는 시위를 하다 붙잡혀 3일간 구치소에 구금됐었다. 그날 밤 임씨는 꿈속에서 아들 경철씨를 만났다. 아들은 “어무이 배가 너무 고프요. 밥좀 주시오. 어무이 밥 좀 주시오”라며 울었다고 한다.

임씨는 꿈속에서 “경철아 미안하다. 내 새끼 누명 벗기려 제삿밥도 못 챙겼구먼”이라고 울부짖으며 “니 딸내미는 걱정말어라. 애미가 꼭 여우고 갈테니. 애미도 언젠간 갈테니 그때 이야기 많이 허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먹먹함에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던 임씨는 “그때 보이고 경철이가 안보이우. 더 많은 얘기를 하고픈디. 이제 사진 안보믄 내아들 얼굴도 잊어 먹겄소”라며 “근디 이제 여한이 없어브러. 자식들 다 잘 갈캐서 외국서 잘 살고 손녀도 보냈응께. 처음엔 ‘딸’ 여우고 혼자 잘려니 잠도 안오드만…”이라며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주재홍 기자 jujae84@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