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사회과학, 호남정치의 미래 본사 사장 nam48@kjdaily.com

2015년 05월 13일(수) 20:36

광주는 정치1번지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4일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에는 벌써부터 ‘참배정치’가 풀가동되고 있다. 정치를 통해 뭔가 큰 권력을 잡아보려는 선량은 너나할 것 없이 5·18영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달라고 빈다. 현충원은 주요 정치인들이 새로운 출발과 결의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치적 포장으로 운용되는 관행화된 ‘참배정치’ 장소이지만, 국립5·18민주묘지 만큼은 ‘참배정치’ 장소로 악용하지 말라. ‘광주정신’이 가리키는 정치 지향과 가치가 확연히 다른 사람이 사진 찍히기 위해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인다면 5월 영령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오월에 ‘호남정치 복원’ 주역이 되고자 5월 영령 앞에 ‘참배정치’를 하려는 이들에게 감히 고한다. 호남정치 복원은 단순히 호남의 지역주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호남사상 광주정신’을 잇는 대의정치 복원이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호남정신은 민족적,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힘 있게 떠받친 가치와 저항 정신이다. 광주정신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식의 애국정신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반독재투쟁 정신, 동학농민혁명이 상징하는 제폭구민과 반외세 정신이다. 이런 정신을 계승하고 정치사회학적으로 투영해 호남사람과 대한민국 국민이 진정 원하는 이상정치의 실현이 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음흉한 속내를 품은 ‘호남정치 복원’은 통합과 혁신을 통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4·29서구을 선거에서 뜨거운 맛을 본 문재인 대표가 광주에 와서 ‘광주정신’ 운운하며 반성을 할 때 광주시민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당 대표 취임 후 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제기됐던 문제들, 친노·비노라는 계파패권주의, 국가정책 이슈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진정성 있게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모습 때문이다. 불임정당, 불신정당이라는 합병증에 걸린 새정치민주연합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감히 메스를 들 용기를 내지 못하고, 고작 상처부위를 봉합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결국 안이한 처방이 상처를 더욱 곪게 만들었으며 부작용만 나타나게 만들어 ‘민주적인 정당’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인 광주가 이제 세월호 참사, ‘성완종 게이트’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심판’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심판’에 메시지를 보낸 이유, 그 준엄한 경고를 야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새 정치’를 위한 노선과 가치, 철학이 없고, 리더십 부재, 고질적 계파갈등, 패거리 정치, 지도부의 전횡과 계파담합, 비민주적인 공천방식, 지역에 토착화된 낡고 구태 한 기득권에 대한 충고다. 환골탈태 변화를 바라고 진정한 ‘새 정치’를 갈망하는 지역민에게 개혁정치를 이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려면 ‘광주정신 담는 정당’ 되겠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특히 5·18 35년 동안 국회 130석이나 되는 야당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 또한 압박하지 못하면서, 영령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나.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5월 영령을 훼손하는,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들 조차 정치적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5월 정신을 정치에 악용만 하려 든다면 광주는 용납하기 어렵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스스로 존엄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그 존엄을 획득하려고 한 민중항쟁이었다. 반독재민주화투쟁, 지역차별 철폐투쟁, 경제사회문화적 생존권투쟁이었다. 항쟁 이후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확고한 개혁진보정치의 보루로서 정치발전을 선도해 왔다. 광주정신이 바라는 정치는 시민이 주인 되는 정당을 만들어가는 정치공동체다. 생활정치, 민생정치, 시민이 주인 되는 좋은 정치다. 좋은 권력을 바탕으로 신뢰 사회를 위한 대타협의 정치 문화를 광주는 희구한다.

따라서 5월에 광주에 몰려올 수많은 정치인들은 ‘호남정치복원론’의 실체를 자기 잣대로, 제맘대로 해석하지 말기 바란다. ‘호남정치복원론’은 일부 정치인의 기득권 중심의 관점이 아니라, 호남지역 주민들과 호남정신을 소중하게 간직한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의 민주성과 개혁성 그리고 정의의 결합체다. 단순히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들의 자기 세력 확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개혁 정치 그리고 정의 실현을 바라는 주권재민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우리 역사를 통해서 본 호남정신의 핵심은 불의에 대한 저항을 통한 애국충정의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남정치복원론’은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야당이 정치력을 발휘하고 야성을 되찾아 수권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호남민중들의 정신이 내재된 민주성과 개혁성 그리고 정의를 실천하라는 준엄한 명령의 한 형태다.

지금,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던 5월 영령들이 우리에게 말한다. 호남을 지금 정치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고착화될 것인가, 아니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호남의 정치적 ‘꽃씨’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꽃술’이 될 것인가~. 오월 영령은 호남 정치인들이 고향의 발전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확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개혁에 앞장서라고 주문하고 있다.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땐 역시 ‘필사즉생 필생즉사’가 답이다. /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