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 수습·전단 배포…5월만 되면 고문 악몽 시달려” 5·18 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오월 광주의 어머니들 <8>정현애씨 5·18 당시 중학교 교사 재직…금남로서 남편과 ‘녹두서점’ 운영 군부 잔인무도한 학살 알리는 소식지 발간…사실상 지휘본부 계엄군에 체포…남편이 진술서에 지장찍는 조건으로 풀려나 이정민 기자 genius@kjdaily.com

2015년 05월 13일(수) 20:39

“1980년대 초반은 죄목을 조작해 빨갱이로 몰아 가족까지 함께 처벌하던 시기…. 그런 의미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던 80년 5월은 ‘민주화의 봄’이었다.”

죄 없는 사람이 몽둥이질을 당하고 총에 맞아 죽었던 지난 1980년 5월. 이곳에는 작은 서점 하나가 시민들의 기지였고 본부였다. 금남로 안쪽 도청에서 5분 남짓거리의 녹두서점이 그곳이다. 이곳을 남편과 함께 운영했던 정현애(64)씨.

80년 5월 당시 장성 삼계중 역사 교사로 재직했던 정씨는 “80년 2·3월엔 농민·노동운동을 하면 당국에서 빨갱이라고 몰아갔다”며 “심지어 죄목을 조작해 빨갱이로 몰아 가족까지 함께 처벌하던 시기였다. 당시엔 공산주의자로 몰리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고 시대적 상황을 설명했다.

정씨는 “당시에는 전단지 하나만 뿌려도 수배령 떨어지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 후배들이 오면 밥 해주고 잘 도망 다닐 수 있도록 여비도 보태주고 모든 서점의 수입은 그렇게 사용됐다”며 “그러던 중 5월17일 밤 전두환 군부의 계엄선포로 광주지역의 민주인사들과 대학생 지도자들이 줄줄이 예비검속되자 녹두서점은 서로의 안위와 상황일지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활동거점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레 지휘본부가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광주에서 벌어지는 잔인무도한 국가의 학살 내용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 소식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어 5월18일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이 시작됐고 녹두서점 앞에서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무차별 곤봉세례에 피투성이로 쓰러지고 끌려갔다. 또한 21일 오후 무차별적인 발포가 이어지자 항쟁을 이끌던 사람들도 서점 문을 닫고 피신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씨는 총기를 탈취한 시민군들을 놔두고 광주를 떠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정씨는 “21일 밤 시민군들이 목숨을 건 투쟁으로 군인들의 무차별 폭력을 저지하자, 피신했던 활동가들이 다시 모였다”며 “이후 녹두서점이 경찰·군인에게 너무 노출돼 있어 YWCA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고 밝혔다.

이후 YWCA에서 주검 수습, 전단 배포, 시민 행사 등등 그 모든 일을 함께 하면서 마지막까지 도청 사수를 주장했다. 그러나 5월27일 새벽 최후의 진압작전이 감행됐고 그 역시 여동생 현순씨와 함께 체포됐다.

정씨의 남편은 감옥에서 정씨와 정씨의 여동생을 풀어주는 대신 꾸며진 진술서에 지장 찍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가족은 풀려나야한다는 생각으로 결국 남편은 지장을 찍었고 정씨와 여동생은 석방됐다. 남편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정씨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남편과 동료를 위해 석방운동, 진상규명 운동을 81년까지 했다. 정씨는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면서 살았다”며 “운동을 펼친 끝에 남편은 81년 12월에 다시 만나게 됐다”고 울먹였다.

이후 정씨는 87년 6월항쟁 이후 참교육운동으로 해직과 복직의 굴곡을 거쳤고 광주시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여전히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씨는 “5·18에 대해 젊은이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며 “민주화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누리자는 생각을 하자는 취지기 때문에 5·18은 민주화의 가장 큰 분수령이다”고 힘줘 말했다. 이처럼 80년 5월 당시 중심이 됐던 정씨와 남편은 지금도 5월만 되면 꿈에 고문당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오는 등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정민 기자 genius@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