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시인’…‘그’를 기리다 ‘범대순 시인 1주기’… 내일 드맹아트홀서 추모식·유고 시집 등 출판회 박희중 기자 ehsql01@kjdaily.com

2015년 05월 19일(화) 19:56

‘무등산 시인’, ‘아름다운 가난의 시인’으로 불렸던 범대순(1930-2014) 시인. 그가 펴낸 시집 ‘무등산’을 해설한 평론가 김형중의 말에 따르면 그는 “백수광사(白鬚狂士), 즉 하얀 수염의 미친 선비였다”. “하얀 수염의 미친 선비는 무등산에서 하나의 오브제이고 하나의 설치미술이었다. 이는 무등을 품고 살았던 그의 온전한 삶의 발로였다”고….

그는 평생동안 1천100번의 무등산 산행 그가운데 160번의 허락된 정상 1천100고지 서석대 등정를 올랐다. 그러나 여기 숫자는 그의 말에 따르면 숫자가 아니라 스토리였다.

시인에게 무등산 산행은 ‘죽음에 이른 병’이었으며 ‘요산요수(樂山樂水)’가 아닌 ‘고산고수(苦山苦水)’의 고행이었다.

전남대 영문과 교수였던 범대순 시인의 1주기(5월21일)을 맞아 그의 문학과 삶을 기리는 추모식과 그의 작품을 정리한 시·산문·논총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유고시집 ‘백년’, 산문집 ‘문림소요’, 논평집 ‘범대순 논총’

오는 21일 남구 사동 소재 드맹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광주·전남작가회의, 광주문인협회, 원탁시 등 생전에 고인이 활동했던 단체의 문인들과 학계 인사들 그리고 유족들이 고인의 문학과 생을 기린다.

또 이 자리에서 유고 시집 ‘백년’, 유고 산문집 ‘문림소요(文林逍遙)’(전3권), ‘범대순 논총’(이상 문학들 刊) 등의 출간을 기념한다.

범대순 시인은 폐암 투병 중에도 임종 직전까지 주위에 알리지 않고 병상에서 노트북으로 시편들을 정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발간된 시집 ‘백년’이다.

“눈이 내리네/피아노가 우네/옆에 서서 바이올린이 우네//무등산에 눈이 내리면/거기 있어야 할 사람/거기 없네(‘눈이 내리네’ 부분)

“버리고 떠나기/버리고 안 떠나기/안 버리고 떠나기/안 버리고 안 떠나기(‘즈문 가람-법정法頂에게’ 전문) 등의 시에서 느낄 수 있듯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거나 마지막까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려 했던 시인의 고고한 체취가 배인 시 53편이 수록돼 있다.

산문집 ‘문림소요(文林逍遙)’(전3권)는 총 2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고인이 15년 동안 써온 200여편의 수상(隨想)을 엮은 것이다. 이 기간은 그가 무등산 산행에 ‘미친’ 시간이기도 하다. 생전에 작성한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이 글은 머리로 쓴 글이 아니다. 나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썼다”고 고백했다.

사진은 지난해 2월 범대순 시인이 자택에 마련한 자신의 시문학관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이 보내준 육필시집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범대순 논총’은 고인의 문학·사상·인간에 대한 다른 이들의 논평을 모은 것이다. 김현승, 권일송, 윤삼하, 성찬경, 김우창, 최하림, 황현산, 김성곤, 김준태, 이동확, 김형중 등 36명이 쓴 시인론, 시집평, 단선평과 고인의 자작시 창작비평, 대담으로 구성됐다.

특히 시인은 지난해 “나의 시문학관은 나의 과거이면서, 나의 인생이면서, 나 자신이다. 책이나 시(詩)보다 사람이 귀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며 병중에도 불구 자신의 계림동 자택에 자신의 시문학관을 열기도 했다.

그는 “80여년 살아온 흔적들이 다행히 그대로 있어서 살아있는 동안은 생동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비록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 나의 시문학관에는 개인이 아무리 작아도 개인은 살 가치가 있고 그리고 그 작은 것이 남 앞에 떳떳하게 살아나갈 당당한 가치임을 제시하고 싶었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1930년 6월 16일, 광주시 북구 효령동 신촌에서 태어난 범대순 시인은 1950년 광주 서중학교와 1957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했으며, 미국 오하이오주 데니슨 대학 연구 교수, 영국 옥스퍼드 대학, 런던 대학, 미국 아이오와 대학, 영국 캠브리지 대학과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연구했다.
저서로 ‘범대순 전집 6권’, 시집 ‘흑인고수 루이의 북’ ‘이방에서 노자를 읽다’ ‘기승전결’ ‘백지시’ ‘파안대소’ ‘무등산’ ‘백년’ 등 16권, 평론집 ‘백지와 기계의 시학’ ‘1930년대의 영시연구’, 번역서 ‘현대영미시론’ ‘W.H 오든 시집’ 등을 펴냈다. 국민훈장 동백장, 문예한국 대상, 광주 예술 부문 시민대상, 금호학술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4년 5월 21일 타계했다.

/박희중 기자 ehsql01@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