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멈춤’…거리의 그림에서 잊고 지낸 삶의 여백을 보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45> 미얀마 ‘황금의 땅’ 불탑의 나라 kjdaily.com

2015년 05월 20일(수) 19:54

박종석 作 ‘미얀마 타치레익에서 태국을 보다’

불심이 충만한 나라 미얀마에 늘 가고 싶었다. 청신한 본토의 속살을 더듬어보고 싶지만 그러한 인연을 뒤로 미루고 라오스에 인접한 미얀마의 번잡한 국경선을 넘는다.

하루의 체류기간과 부담 없이 출입국하는 분위기에 긴장감은 일체 없다. 외국인은 출입국 사무실에서 통과 절차 후 입국한다.

미얀마 황금사원에서.

국경도시 타치레익(Tachileik)의 분위기는 북새통 그 자체다. 대규모 시장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상인들은 어깨에 걸친 소형좌판에 여러 나라의 가짜 담배를 가득 담아 판매한다. 그리고 골동품 가게와 생활도구 및 생필품 판매점이 활발하게 거래하는 모습을 보니 어려운 경제상황의 변방 소도시이지만 나름대로 순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덕 위의 대형 황금 불탑이 시선을 모은다. 과거에 한자를 사용한 문화가 남아 있는 흔적을 발견한다.

한자로 큼직하게 대웅보전이 쓰여 있는 절은 규모가 꽤 커서 남방불교 수행의 활발함을 가늠케 하지만, 절 내 한가한 분위기는 궁핍한 서민의 생활상과 닮아있다.

경건한 절 아래 동네에 즐비한 허름한 상점들은 구멍가게들이지만 미얀마의 변방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화랑가 일색이다.

호기심에 여러 가게를 방문한다. 작가들의 소품들이 유리도 끼워지지 않은 허름한 틀 속에 진열돼 있다. 그런데 몇몇 작품들 중 수준급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와 가격을 물어보며 사고 싶다고 하니, 주인은 작가가 절대 팔지 말라고 해서 판매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주인에 따르면 몇 점의 좋은 작품들은 다 그렇다며 이유는 작가가 돈에 구속받기 싫어서 전시만 하고 다시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더니 우편용 그림엽서만 판매한단다. 아쉬웠다.

미얀마 타치레익 시장 풍경.

가난한 현실이지만 자존심을 돈과 쉽게 바꾸지 않고 보여만 주는 열정이 있다면 그는 생계형보다는 순수와 자유의 양 날개로 자기세계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화가가 아닐까 싶었다.

궁핍한 화가가 그 척박한 현실에서 타협 없이 살기란 쉽지 않다. 세끼 밥과 물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필시 그 화가는 낮에 농사짓고 밤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자가 아닐까? 나 혼자 상상을 해본다.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대단히 존경스럽다는 생각에 그림엽서를 몇 장 사들고 나온다.

지금도 내 화실 책상 위에는 그 그림엽서들이 놓여있다. 가끔 그 엽서를 보면서 ‘진정한 화가의 자세는 세속의 타협에 물들지 않고 많은 고통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승화시킬 수 있는 자세가 필수 조건이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다짐한다.

아산 조방원 화백께서 생전에 일침으로 주신 지침이다. “화가는 입으로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구불언전(口不言錢)’이 상기된다.

미얀마 사찰 ‘대웅보전’

주인공의 얼굴을 알 수 없지만 좋은 품격의 만남이 남겨준 여백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