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함과 부끄러움으로 오월광주를 마무리하며 이경수 편집국장

2015년 05월 25일(월) 20:26

5월이 저물어 간다. 또 한번의 ‘오월광주’가 씁쓸하게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80년 당시 민주와 인권, 자유와 평화를 부르짖으며 핏빛으로 저항했던 오월광주가 올해는 유독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광주시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해보다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35주년을 맞은 5·18 기념식이 ‘주인공’인 5·18 피해자들과 광주시민들이 참여하지 못한 채 반쪽으로 쪼개져 치러지면서 ‘오월영령’들께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 때문이다. 국립민주묘지에서 정부 주관으로 35주년 기념식이 진행된 같은 시각 광주시민들과 5·18 희생자들은 80년 5월 함성으로 가득찼던 옛 전남도청 앞에서 따로 기념식을 치른 것이다. 하늘도 그 아픔을 아는지, 행사 진행 시간 내내 영령들의 눈물같은 비를 뿌렸다.

파행의 원인은 국가보훈처가 제공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에서 제창하게 해 달라는 광주시민들의 간절한 요구를 참으로 고집스럽게 거부한데서 비롯됐다.

광주시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 노래가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 곡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1980년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5월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 때 희생된 윤상원(당시 30세)과 노동운동가인 박기순(당시 23세)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하는 이 곡은 1980년 이후 들불처럼 일어났던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불렸다. 게다가 이 노래는 그동안 5·18 기념식에서 꾸준히 불려왔다. 1997년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된 뒤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다. 더욱이 올해는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 주요 인사들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를 냈음에도 보훈처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처럼 보훈처가 광주시민들의 반발은 물론 35주년 기념식이 파행될 것을 알면서도 끝내 불허 한 것은 5·18정신과 의미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여기에다 국가기념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월광주’를 찾지 않았으며, 공석인 국무총리 대신 부총리가 와서 기념사를 읽는 모습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는 현 정부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현 정부는 여전히 이를 광주만의 행사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다.

광주는 여전히 오월앓이를 하고 있다. 5월만 되면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금남로 일대를 서성이기도 한다. 실제로 1980년 5·18을 경험한 광주시민들의 절반 이상이 35년이 흘러서도 ‘5월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이번 5·18 행사기간에 1980년 5월을 경험한 시민 15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더니 ‘5·18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분노를 느낀다’는 응답이 90%에 육박했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의 74.8%가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5월이 되면 5·18에 대한 생각이나 그림이 떠오른다’고 대답했다. 50.6%는 ‘5월이 되면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했으며 55.6%는 ‘5·18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고 응답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5월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강산이 3번 이상 바뀔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광주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상처만 남기고 5월 광주가 저물어 가고 있다. 또다시 광주시민들에게 많은 과제만 남기고 5월이 마무리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로 보낼 수 없다. 또다시 부끄럽지 않으려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먼저 광주시민들은 80년 5월 그날의 참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주·인권·평화의 오월정신을 탄생시킨 광주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항상 오월정신의 핵심을 간직해야 한다. 그 핵심은 대동정신이다. 아직도 우리 가슴엔 5월 그날, 민중이 하나 됐던 대동세상의 환희가 벅차게 뛰고 있다. 민주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겨 대동정신을 발휘한다면, 광주는 다시 하나 된 모습으로 5월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5·18을 과거로 묻어 버리려는 반민주주의 세력이 여전히 활개를 치면서 오월정신을 낡아빠진 이념과 지역주의로 옭아내려 해도 진실의 빛은 결코 어둠에 갇히지 않는다. 3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광주의 5·18정신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는 그날을 염원하며 내년 오월을 또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