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국제전 진출…작가로의 의욕·열정 충만” 광주시립미술관장 퇴임 후 작가로 돌아온 황영성 화백 뉴욕 갤러리 슈킨 개인전서 유화·드로잉 등 38점 출품 파리·상하이展도 예정 “가족 테마로 왕성한 작업할 것”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5년 05월 25일(월) 20:26

“70을 한참 넘어선 지금, 작가로서의 의욕과 욕망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해요. 비로소 세상살이의 이치와 예술의 화두를 체득했다고나 할까. 해서 평생 천착해온 ‘가족’이란 주제를 안고 더 폭넓은 작업을 할 요량이에요. 국제무대에서의 활동도 더 자주 하게 될 것 같고.”
지난해 8월 광주시립미술관장직을 떠나 순수작가로 돌아온 원로 서양화가 황영성(74·조선대 명예교수) 화백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다. 사실, 40여년 동안 조선대 교수를 지내고 3년여 미술관장을 맡으며 미술행정이나 제자양성에 주력해야 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황 화백이 순수하게 작가로서의 행보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최근이겠다. 오로지 작가일 수 있어서 새삼 즐거운 그는 최근 잇따른 국제전시 요청에 힘입어 청년작가 못지않은 의욕으로 작업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국 뉴욕 첼시의 갤러리 슈킨(shchukin)에서 오는 28일부터 7월24일까지 개인전을 열게 됐다. 황 화백이 뉴욕에 작품을 내걸게 된 것은, 지난 1980년 9월 뉴욕 한국문화원 개관초대전과 2000년 뉴욕 파슨스대학 미술관 개인전에 이어 세 번째이자 개인전으론 두 번째다.

전시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진행 중인 ‘아랍현대미술전’을 기획하는가 하면 앞서 광주비엔날레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큐레이터 샘 바더윌(Sam Bardaouil)과 틸 팰라스(Till Fellrath)가 제안해 이뤄졌다. 이들은 무엇보다 한국의 미와 전통, 가족 등 정서를 독특한 조형언어로 그려낸 황 화백의 작품이 가진 예술성을 높이 평가, 전시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황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 ‘격자를 넘어선 그림(Painting beyond the grid)’이란 주제로 38점을 출품할 예정. 황 화백 하면 떠오르는 ‘가족’ 테마의 화려한 색채 작품보다는 단색조의 유화와 이색적인 입체작품, 드로잉 등이 주를 이룬다. 출품작 모두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작업한 것들로, 황 화백의 과거 작업을 엿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세월을 관통해 변함없는 것은 화폭 속 작품형식이 여전히 격자무늬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영성 作 ‘가족이야기’

“서구에서는 화려한 것을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큐레이터들이 작업실을 찾아와 살펴보더니 예전의 단색 유화와 드로잉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특히 드로잉에요. 사실 우리나라에선 드로잉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서구에선 작가의 기초로 삼아 중요하게 생각하죠. 저 역시 드로잉을 작가의 기본으로 삼는 편이라 이번 전시에서 출품작 중 절반가량인 18점이 드로잉이란 게 뜻 깊습니다.”

이번 뉴욕 개인전은 이후 프랑스 파리로 자리를 옮겨 다시 펼쳐질 방침이다. 또 오는 10월8일엔 중국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초대전도 진행될 계획이다. 뉴욕과 파리, 상하이 등 세계 현대미술을 주도하고 있는 도시를 순회하며 작품을 내걸게 된 것이다. 황 화백은 이 같은 인기에 대해 ‘지극히 한국적이고 토종적인 작품 색채’ 때문이라고 말한다.

“1980년 뉴욕 한국문화원 개관 초대전 때 처음으로 미국 진출을 하게 됐는데, 당시 회색조의 마을 연작 6점을 들고 갔죠. 작가로서도 막내 축에 속해 국제무대가 너무 거대하게 보인데다, 작품도 너무 향토적이어서 창피하더라고. 서양인들이 촌스럽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그 전시기간 중 미국 현지 기독교신문인 크리스챤 사이언스 모니터가 내 작품만 집중조명을 한거예요. 나중에야 ‘가장 우리다운 게 세계적인 경쟁력’이라는 걸 깨달았죠. 세상이 국제화되면서 더더욱 중요해지는 게 자신만의 정체성, 그네들만의 색깔 같아.”

황 화백 작품은 말 그대로 향토 그 자체다. 평야와 초가집, 식솔과 자연을 넘어 숫자와 추상적인 기호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이 그에게 ‘가족’과 ‘고향’이란 이름으로 자리한다. 피부치뿐 아니라 무생물까지 가족이라니, 황 화백의 예술철학과 정신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황 화백은 이 같은 철학을 기반으로 1970년대에는 회색, 1980년대엔 녹색, 1990년대에는 칼라와 단색조를 병행한 작업을 펼쳐왔다. 1990년대부턴 작은 사각형 형태의 면 분할을 통해 세련미도 더했다. 일명 ‘격자그림’은 여기서 비롯돼 그만의 대표이미지가 됐다.

작업에의 열정이 넘치는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 걸까.

“나도 모르지. 사실 나도 나에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나갈 것인가 항상 자신에게 물으며 고민해야 하니까요. 다만 그동안 천착해온 ‘가족’이라는 화두를 변함없이 안고 가며 작업할 것이란 건 확실해요. 그런데 요즘 ‘내 삶에서의 전쟁’이라는 테마로 작업을 확장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직접 겪었던 일제시대-해방-6·25-5·18 등등 역사적 전쟁과 참사가 개개인의 삶과 가족에 미친 영향을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게 내 마지막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죠.”/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