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처녀의 순박한 미소가 주는 쉼표의 여유…‘느림’에서 ‘비움’을 배우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46> 라오스 삶의 쉼표를 찾아 떠나는 여행 kjdaily.com

2015년 05월 27일(수) 19:16

박종석 作 ‘라오스 땡볕 아래 와불’

너무나 척박하고 가난해서 풍족한 삶을 누리지 못하지만 소박하게 살아가는 라오스 산간지역의 오지사람들! 13년 전의 시각이지만, 이제는 조금은 변했으리라.



대통령궁 정문에 경비원을 몇 명밖에 두지 않는 소박한 지도자를 두고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외국 대통령이 라오스 대통령궁에 방문했는데 경비가 너무 소홀하게 느껴져 불안감에 투정을 하니 라오스 대통령이 “당신은 무슨 죄를 많이 지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를 라오스여행 중 듣는다.

라오스 사원의 와불 앞에서.

국민들의 생활상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경제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미비해서 국가정책의 활발함도 별로 느낄 수 없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재에는 많은 외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국가가 됐다. 왕권체제가 1959년에 종식됐다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한자문화권의 흔적이 남아있어 도덕관념이 철두철미하다. 또 대가족 중심으로 효도정신이 강하다. 특히 산간 서민들은 큰 욕심 없이 만족하며 항상 미소를 머금고 배려하는 풍토를 지녔다.

수도 비엔타인에서 여행을 마치고 방비엥을 가는데 덜컹거리는 장거리 버스 지붕 위에 외국 배낭족 청년들이 가득 올라타서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군소리 없이 장시간 잘 적응한다.

‘라오스 상공에서 바라본 강과 시가지’

황량한 고산의 비포장도로를 굽이굽이 돌며 수백미터 아래로 하강해서 계곡의 나무다리를 건너 잠시 쉴 때이다.

그저 허름한 좌판에서 난초(春蘭)를 파는 사람, 뽕나무열매 및 생기 없는 과일을 파는 10여명의 원주민들뿐이다.

억척스럽게 돈 버는 장사라기보다는 방랑자들을 위한 나눔의 허름한 장터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 30여분 간 머물며 오디 열매를 듬뿍 사서 포식하니 입술과 치아가 검붉게 염색약을 바른 듯 했다. 그 꼴불견의 모습에 동네 원주민들과 함께 웃는데 그들은 부처님을 닮은 듯 선량한 민초들이다. 원시성의 자연과 사람은 계속 이어진다.

‘나무 그늘 아래서’

장거리 여정에 쉬엄쉬엄 고물 같은 버스가 산간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오르지만 왠지 마음도 힘겨운 버스의 형편과 함께 한다.

결국 오래된 버스는 폐병 말기환자의 가래가 목구멍에서 끓는 듯 터덕거리다, 결국 엔진이 있는 운전석 옆에 연기가 자욱하게 뿜어 오른다. 우려했던 고장으로 차는 멈추고 모든 승객은 내려서 먼지가 가득한 신작로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운전기사가 물통을 들고 꽤나 먼 마을에 내려가 물을 가져와서 열을 식히고 수리하는데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주민들은 그려러니 하고, 젊은 배낭 여행자들 또한 불만 없이 기다린다.

미켈란제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제작하듯이 기사도 버스 아래 땅바닥에 누워 십자가를 짊어지고 땀을 흘리며 수술을 한다. 지루한 수리를 마치고 시동이 걸리니 승객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친다. 아마도 버스 기사의 마법사 같은 노고와 여행자 자신들의 초조함이 해결돼 느껴지는 해방감일 것이다.

그 버스를 비유하면 기진맥진해서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늙은 코끼리처럼 느껴진다. 노련한 조련사 같은 운전기사는 시골 동네 외에 산간도로에서도 손들어 승차하는 사람을 태우고 또 내려준다. 버스 정류장 개념은 어차피 필요 없다. 사회법이 필요 없는 자연법으로, 손님의 손이 올라가면 그곳이 정류장이다. 차는 시간도 정해지지 않아 천천히 서행한다.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옆 동네 친구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 다정하게 헤어지는 오지사람들!

‘운무에 덮힌 산’

그 와중에 내 옆자리에는 청순한 시골처녀가 탑승, 합석이 돼 몇 시간 함께 한다. 서행 중 가끔 시골 간이정류장에서 파는 이름 모를 열매를 사서 그녀에게 권한다. 이방인이 주는 과일이지만 함께 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나는 시골처녀를 잠시 이성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세탁 되어진다. 그 처녀의 순수성에 동화돼 분심(分心)은 없어지고 그녀도 다른 과일을 사서 나에게 흔연스럽게 대접한다. 바로 앞좌석에 앉은 치아가 다 빠진 할머니조차도 히죽히죽 웃으며 마음의 벽을 허물고 대한다. 요동치듯 흔들리는 공간이지만 행복한 사람냄새가 그윽한 시간이다. 몇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자기 동네에서 하차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아쉬운 표정도 없이 손을 흔들어 준다.

그녀는 순수함과 낙천적인 성녀의 면모를 보여줬고 나는 잠시 계산에서 분리된 오류로 함께했지만 상대의 맑은 영혼에 녹아들어 분심이 제거돼 버린 느낌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나 소시민들도 똑같이 맑은 품성으로 살림하는 세상이 진정한 지상의 천국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가버린 텅 빈 자리이지만 충만된 생각의 지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