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혁신, 일으킬 것인가, 당할 것인가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05월 27일(수) 20:21

혁신은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어 관습, 조직, 방법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신기술과 기업 경영에서 많이 쓰인다. 단순한 생산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신시장 개척이나 신제품의 개발, 신자원의 획득, 생산조직의 개선, 신제도의 도입 등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혁신이야말로 경제발전의 가장 주도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 혁신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정치 쪽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낙후됐다고 비판받는 ‘한국정치’는 ‘혁신’‘개혁’을 입에 달고 산다. 위기의식 속에 최근 공식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혁신’이 신선하지 않는 이유다. 출범식에서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권력을 소유하겠다는 패권과 개인, 계파 이익을 내려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과연 혁신위원장이 기득권을 내려놓으란다고 그 좋은 기득권을 내려놓을 국회의원 몇이나 될까.

새정치연합의 쇄신론은 어제 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 등 박근혜정부 들어 단 한 차례도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서 ‘참패’‘완패’를 반복했지만 뼈를 깎겠다면서 ‘피 한 방울’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요구에 의해 혁신위원회를 가동하고, 혁신을 하겠다고 하니, 호남인의 시각에서 묻는다.

첫째, 정치혁신의 내용과 형식, 깊이는 어디까지인가. 호남이 바라는 ‘파괴적인 혁신’을 과연 할 수 있는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을 ‘존속적 혁신’과 ‘파괴적인 혁신’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존속적 혁신’은 주류 시장에 있는 기업이 주력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선시켜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더 높은 가격에 이를 판매하고자 하는 전략을 말한다. ‘파괴적 혁신’은 주류 제품보다 간단한 기술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존 시장의 주류 기업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심지어 무시당하지만 파괴적 혁신 기술로 점차 상위 시장까지 잠식하게 된다. 기존의 주류 기업들은 파괴적 혁신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하거나, 시장에서 추방당하기도 한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 방향은 ‘존속적 혁신’인 것 같다. 호남이 바라는 바는 ‘파괴적인 혁신’이다.

둘째, 제도혁신인가 사람혁신인가. 새정치연합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당을 지지하는 국민과 당원이다. 국민과 당원이 원하는 혁신 방향은 줄곧 ‘사람혁신’이었다. 모든 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낮은 자리에서 겸허히 혁신에 동참해야 하고 당을 위해 기꺼이 희생도 감내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김상곤 위원장은 어떤 명분을 갖고 당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치인을 잘라낼 것인가.

셋째,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 실패정당을 만들었던 이들은 어떤 책임를 질 것인가. 혁신이란 참패의 근본적 원인을 정확히 진단, 당의 체질까지 근본으로부터 바꿀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여러 차례 혁신 흉내를 냈으나 단 한차례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패배의 주역들이 계속 남아서 당을 주도하고 쇄신까지 주도한다면 당명이나 지도부 얼굴 바꾸기 등 ‘정치적 분식(紛飾)’ 밖에 안 된다. 이젠 국민이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넷째, 당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인 계파·패거리·기득권 정치 청산이 과연 가능한가.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혁신안이 없어서 혁신하지 못한 것 아니다. 비전을 잃고 계파·패거리·기득권 정치에 함몰된 상태에서 그 누구도 혁신 드라이브를 걸 수 없었다. 현실에 안주해 변변한 비전도 없고, 비전이 있어도 그걸 실천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혁신위원회 뒤에 숨어 있는 상태에선, 혁신기구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공천 방안을 내놓을 수도, 물갈이를 몇 %로 하겠다는 약속도, 문재인 대표 비선라인의 총선 불출마선언도, 당 지도부와 당직자들의 인적쇄신도, 계파 간 이해관계 때문에 쉬워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청산한다는 말인가.

다섯째, 정당혁신이 곧 정치개혁,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가.

현재 호남정치인들은 혁신 내용이 유리하지 않으면 분당을 불사할 자세다. 당내 주요 인사들의 마음가짐은 결국 혁신위가 자기 맘에 안 드는 내용을 가지고 오면 말을 듣지 않겠다는 태도다. 야당의 고질적 문제다. ‘선당후사’(개인보다 당이 우선)는 연설문에만 있을 뿐, 당내 모든 이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공천권, 자신의 당선가능성뿐이다. 나와 우리계파가 당선될 ‘안’이면 혁신이고, 떨어질 ‘안’이면 패권주의라며 몰아붙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동안 가장 잘못한 것 중에 하나는 국민의 억울함과 변화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지 못한 것이다. 정치혁신은 정치인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원하는 바에 눈높이에 맞춰야 성공한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위민(爲民)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역할을 포장하고 유권자인 시민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정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다. 서양의 정치발전사를 보아도 정치의 주체는 시민이다. 시민사회가 태동하고 비로소 정치가 만들어진 것이지 정치가 시민계급을 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시민사회가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치를 향한 시민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혁신 방향이 정해진다. 오늘날 정치를 향한 시민의 요구는 세 가지다. 하나는 정치의 본령인 책임성을 갖추라는 요구다. 둘은 시대에 맞는 개혁정치를 구현하라는 것이다. 셋은 정치를 본래 주인인 시민들에게 돌려주라는 것이다. 시민의 요구, 시민의 눈높이, 시민의 의견이 정치혁신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입으로는 국익·국민을 외치면서 ‘좁쌀정치’ ‘외곬관성’을 못 버리면 희망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이 ‘혁신’이란 단어를 쓸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