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해와인문기획 시네필로 ‘분노할 때 그녀는…’와 페미니즘 kjdaily.com

2015년 06월 03일(수) 20:14

시네필로는 철학적 지점에서 영화를, 영화적 지점에서 철학을 말하고 묻는 해와문화예술공간의 인문기획으로 격주 수요일 퇴근길 운림동 숙실마을 해와 소극장에서 해와자유대학 지식강좌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영역은 공적 토론이 이뤄지는 정치공동체인 폴리스(Polis)와 가계의 살림을 담당하는 경제공동체인 오이코스(Oikos)로 분리된다. 폴리스와 오이코스의 엄격한 분리는 공사(公私)의 구분에 의한 정치적 청렴을 의미하면서도 국가 구성원간의 불평등을 은폐하고 있다. 폴리스를 구성하는 시민이 될 자격은 자국에서 오이코스를 거느리는 성인 남성 가장에게만 주어지며, 폴리스가 가능한 것은 폴리스로부터 배제된 여성·노예·미성년·외국인이 오이코스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분리에 따라 정치는 가정의 일에 개입할 수 없으며, 가정은 오로지 가장의 지배에 의해 구성된 위계적 내부질서를 따른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를 구호로 하는 제2세대 페미니즘은 이러한 공사분리로 인한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들은 성·몸·가족 등 그동안 사적인 것으로 간주됐던 문제들을 정치적 의제로 삼아 등한시됐던 여성의 권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담론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정치적 의미에서 조직적인 페미니즘이 등장한 것은 1840년대 여성참정권과 기혼여성사유재산권 인정에 관한 법률을 제안하면서부터다.

‘평등’을 이념으로 한 1세대 페미니즘은 시몬느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를 이론적 기반으로 남녀의 경제적·법적 평등과 복지정책 개선에 주력했다. 1920년 여성참정권 획득으로 정점을 찍은 1세대 페미니즘은 1960년대 학생운동·흑인 인권운동·월남전 반대운동·반문화운동과 함께 ‘다름’·‘차이’·‘비대칭성’을 화두로 삼아 새롭게 등장한다. 베티 프리단과 케이트 밀렛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2세대 페미니즘은 낙태, 강간, 어린이 성폭행, 동성애 등 그동안 사적영역으로 치부했던 문제를 표면화했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는 흑인 인권운동의 구호인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를 따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급진적 페미니즘이 가장 활발히 펼쳐졌던 1966년에서 1971년 사이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케이트 밀렛, 베티 프리단을 비롯해 2세대 페미니즘을 주도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30명이 넘는 액티비스트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사진, 방송, 영상에 남겨진 이들의 기록을 되짚는 동시에 백발이 된 이들의 인터뷰를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남성에 대한 잘못된 우월·특권의식을 지닌 여성의 가치관을 조롱하기 위한 수사로 소비되곤 한다.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는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자동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남녀뿐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로 자신을 무장한 왜곡된 여성우월주의자도 봐야할 영화다. 전자에게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 집단을 향해 창끝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남·여의 분할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남성과 연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후자에게는 여성해방운동이 단순히 남성에 대한 여성의 배타적 우위선점이 아니라 여성 뿐 아니라 흑인·동성애자 등 권리를 억압받고 있는 다른 종류의 소수자와 연대해 차별에 저항하는 사회변혁운동임을 알려준다./최송아 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