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호남정치를 위기라 하는가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06월 10일(수) 20:47

메르스 창궐 전에 정치권은 ‘호남정치복원’ 이슈로 갑론을박 했다. 그러나 메르스로 전국 민심이 흉흉해진 요즘, 정치권 스스로 정치 얘기하는 것을 사치로 여기고 금기시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메르스 정국’에서도 경향신문에서 ‘호남 정치의 위기’를 주제로 벌어진 영·호남 두 학자의 논쟁은 눈길을 끌만한 가치가 있었다.

먼저 물꼬를 튼 이는 경북대 경제학과 이정우 교수. ‘야당의 위기, 호남의 위기’(경향신문 5월 26일)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실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위기인데, 비노와 호남에서 주장하는 친노 패권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4·29 보궐선거의 참패도 탈당한 두 사람을 나무라는 대신 문재인 대표더러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참여정부하에서의 ‘호남 소외론’ 역시 근거 없으며, 선거 패배 책임론, 친노 패권론으로 야당을 분열시켜서는 안된다. 지금 호남은 실리주의의 유혹에 빠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고 있다. 양식을 가진 호남인은 일대분발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나간채 명예교수가 ‘지금 호남은 위기가 아니다’(경향신문 6월5일)는 반론문을 보냈다.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소수의견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2012년 말 대선 패배 직후에 야당 후보였던 그가 부정선거 의혹 자체를 덮어버리는 이상한(?) 정치행위를 보일 때부터 민주 시민은 의아해했다. 많은 국민들이 국정원 선거개입과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관련 경찰관이 양심선언을 하는 마당에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정치행위 자체가 야당 위기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제1야당 대표의 순진하고 유약한 저항과 도전은 민주와 진보를 꿈꾸는 국민에게 절망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호남이 실리주의의 유혹에 빠져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나친 표현이다. 일부 정치인만을 지목하고 한 말이라면, 그 대상이 정확하게 표현되어야 할 일이다’고 일갈했다. ‘양식을 가진 호남인들의 일대 분발을 촉구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역민을 당황하게 하는 표현이다. 한국 지역정치 현실에서 볼 때 지역민의 정치행위를 폄훼하고 모독하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야당의 위기를 호남의 위기와 대응시키고, 더 나아가 호남인을 강박하는 표현은 무엄하다. 호남의 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정치 기적의 주역이 바로 이 지역민이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필자는 호남에 살아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전남대 나간채 교수의 논리가 맞다고 본다. 나아가 최근 호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호남정치 복원은 영남이냐 호남이냐, 비노냐 친노냐, 주류냐 비주류냐 식 논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두 석학의 논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주·전남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거대 담론이 저 밑에서부터 생성되었으나 지역 여론을 모아 끝까지 토론하고 방향에 대한 가열 찬 모색을 하지 않았다. 늘 몇몇 욕심 있는 정치인들만 여론몰이 색깔몰이식 주장과 토론을 했을 뿐이다. 자 그러면, 두 석학의 찬반 논쟁을 기점으로 ‘호남정치 소외’와 ‘호남정치 복원’에 대한 외부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답이 나올 때까지 끝장 토론해 볼 필요가 있다.

호남정치 복원은 단순히 호남의 지역주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호남의 정신을 잇는 정치를 복원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호남정신은 민족적,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용기있게 떠받친 가치와 의리정신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식의 애국정신, 5·18민주화운동의 반독재투쟁 정신, 동학농민혁명이 상징하는 제폭구민과 반외세 반봉건 정신 등이 그러한 예다. 그동안 호남정치는 양 날개로 날아 왔다. 하나는 이 나라 민주·인권·개혁·진보에 대한 열망, 다른 하나는 호남 소외와 낙후를 넘어서는 지역발전 염원이었다. 호남은 한국개혁정치의 견인차, 엔진, 거점이 돼 왔다.

따라서 ‘호남정치복원’ 이슈에는 호남에서부터 정치개혁을 통해 한국정치 희망의 싹을 틔우려는 ‘애씀’이 담겨있다. 호남정치 복원은 호남에서부터 정치개혁을 통해, 기득권을 깨뜨리고 계파패거리를 극복하며 정체성을 확립하고 선명한 비전과 정책을 갖춘 개혁정치 분위기가 조성돼 ‘정치를 통해 국민이 희망’을 느끼도록 하자는 것이다.

‘호남정치복원’ 노력은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말하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권력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4·29 보궐선거 이전에는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었지만 그 전통을 깬 것 자체가 정치혁신이었다. 당 보다는 정치인의 역할 수행 능력을 보았다는 점에서, 광주정치는 지금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담론과 명분이 있어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서는 생각지 못한 함정이 숨어들게 된다. ‘호남정치복원’ 의제에 대해 지역 내에서 명확한 방향제시를 못하는 사이 ‘호남정치위기’라는 악마가 끼어들었다. 이제 호남은 ‘호남정치’라는 구체적인 이슈를 정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발언하지 않으면, 호남정치 복원은 오해 받기 쉽다. 광주와 호남 시민사회는 정치 비판자, 서포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개혁정치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 시대의 ‘정치구원투수’를 자처하며 ‘호남은 왜 정치를 복원’하고자 하는지, 합리적인 언어로 설득해야 한다.

지금, 호남정치, 위기 아니다. 한국정치 발전에 큰 디딤돌을 놓고 있는 것이다./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