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초원과 풍차 위로 첩첩한 산과 드넓은 바다가 다가오고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강릉 바우길 1구간(선자령 풍차길) kjdaily.com

2015년 06월 11일(목) 19:36

전나무 숲길을 조용히 걷다보면 어느새 잣나무 숲길을 만나고 또 울창한 활엽수 숲으로 들어서기도 한다. 부드러운 흙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서면 주위에 야생화들이 수줍은 듯 조용히 손짓한다.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가, 이름모를 계곡은 쉬었다 가라며 풍성한 쉼터를 제공해준다.

3일 연휴 첫날 강릉 가는 길이 만원이다. 광주에서 새벽같이 출발했지만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고속도로는 극심하게 정체를 이룬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예상보다 2시간 이상 늦어진 셈이다. 우리는 대관령마을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는 강릉 바우길 1구간을 걷기 시작한다.


곧바로 숲속에 접어들자 고속도로에서 시달린 일행들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은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면서 숲을 이루고, 이런 나무들의 보살핌 속에서 각종 야생화들은 조용히 꽃을 피웠다. 숲길을 걷다보니 세파에 찌든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정화가 되는 것 같다.

길은 양떼목장 철책 옆으로 이어진다. 철조망 안쪽 목장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완만한 비탈을 따라 조성된 푸른 초원에서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우리는 전나무 숲길을 걷다가 잣나무숲길을 만나기도 하고, 활엽수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기도 한다.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흙길은 한없이 부드럽고, 하늘높이 솟은 나무들은 경쾌하고 시원하다.

곧게 솟은 줄기와 푸른 잎은 생동감을 불러일으켜준다. 숲의 생동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길은 골짜기로 나 있어서 작은 개울이 함께 해준다. 계곡의 물은 티없이 맑게 흐르다가 작은 소를 만들어 쉬었다 가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개울가에 앉아 있으면 계곡의 물과 숲속의 새들이 자연음악을 들려준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위풍당당하게 돌아가고 있는 풍차들. 첩첩이 다가오는 산봉우리와 어울려 이국적 풍취를 자아낸다.

숲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함께 살아간다. 신갈나무 같은 참나무류가 많지만 줄기가 하얀 자작나무들도 잠시 숲을 이룬다. 활엽수가 많은 숲에는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에는 우아한 단풍길이 될 것 같다.

큰 나무 아래에선 여러 가지 야생화들이 꽃을 피웠다. 무엇보다도 수줍은 듯 의연하게 핀 보라색 큰앵초가 눈길을 끈다. 산속 응달에서 자라는 큰앵초는 5-6월 강원도의 높고 깊은 산길을 걷다보면 가끔 만날 수 있다. 앙증맞게 핀 은방울꽃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꽃이 피어있는 줄 모를 정도로 작다. 하지만 가깝게 앉아서 눈을 맞추면 주렁주렁 달려있는 꽃의 모양이 은방울을 닮아 귀엽고 예쁘다. 붉은 병꽃나무도 꽃을 피워 미소를 보낸다.

야생화의 매혹에 빠져 걷다보니 나무 사이로 풍력발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목장 간판이 서 있는 임도사거리에 올라서니 이곳저곳에서 풍차들이 위풍당당하게 돌아가고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그 위에 풍력발전기들이 우뚝우뚝 솟아있어 분위가가 사뭇 이국적이다. 넓은 초원 위에 서 있는 풍차들은 멀리서 첩첩이 다가오는 산봉우리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화 한 폭이 된다.

임도를 따라 걷다가 선자령으로 오르는 백두대간 능선을 만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펼쳐지는 풍차행렬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10년 전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이 길을 밟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장거리를 빠른 속도로 걸어야 했기에 오늘처럼 느긋하게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선자령 정상에 세워진 ‘백두대간 선자령’ 표지석. 표지석 뒷면에는 한반도 지도에 백두대간과 1정간 13정맥을 새긴 산경표가 있다.

황병산에서 대관령으로 뻗어오는 백두대간 주변의 완만한 산비탈에 대단위 초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초지 위에 하얀 색상의 풍력발전기들이 군데군데 서 있다. 부드러운 여성의 몸매를 닮은 산등성은 무뚝뚝한 남자 같은 풍력발전기를 어머니처럼 품어 안는다. 푸른 초원에 구불구불 나 있는 흙길은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물처럼 유연하다.

선자령으로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연분홍 철쭉 너머로 다가오는 풍차의 모습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 같다. 백두대간 능선 주변으로 이어지는 풍차의 행렬과 푸른 초원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이다. 수평적 이미지의 완만한 능선과 수직적 이미지의 풍력발전기가 어울려 경관미를 상승시킨다. 푸른 산과 하얀 풍차가 색상의 대비를 이뤄 풍차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한다.

선자령에 가까워지면서 강릉시내와 동해바다도 한눈에 바라보인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첩첩한 산줄기가 이어진다. 같은 강원도 땅이지만 백두대간 동쪽은 해안지역이고, 서쪽은 산악지역을 이룬다. 그래서 백두대간이 지나는 대관령을 중심으로 동쪽을 영동(嶺東), 서쪽을 영서(嶺西)라 부른다.

선자령(1157m)에 오르니 ‘백두대간 선자령’이라 쓰인 커다란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표지석 뒷면에는 한반도 지도에 백두대간과 1정간 13정맥을 새긴 산경표가 있다. 13정맥 중 남한을 지나는 정맥은 9정맥이다.

선자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드넓은 바다와 첩첩한 산봉우리들이 조화를 이루고, 푸른 초원과 풍차들은 목가적 이미지를 가져다준다.

대관령 풍력발전단지로 불리는 이곳에는 여의도 면적의 7.5배인 600여만 평에 달하는 삼양목장과 300여만 평의 하늘목장(옛 한일목장)의 푸른 초원 위에 49기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이곳 풍력발전기는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 2006년 설치된 대관령 풍력발전기는 아파트 20층 높이인 60m나 되는 거대한 발전기로서 프로펠러 날개 직경이 무려 80m에 이른다.

풍력·태양광·태양열·바이오·지열 등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는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 고갈과 이산화탄소 발생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체에너지로 널리 개발·보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은 신재생에너지가 분담하고 있는 전력비율이 미미하여 2011년 기준 1.7%로, OECD국가 중에서 꼴찌 수준이다.

동해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산자락에 기대고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고 있는 강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릉시내 북쪽에 위치한 경포호수의 모습도 잔잔하게 다가온다. 드넓게 펼쳐지는 동해바다는 이미 하늘과 하나가 되었다. 선자령 동쪽 비탈의 푸른 신록과 대관령 터널을 빠져나온 영동고속도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대관령 옛길인 바우길 2구간을 만난다. 대관령 옛길은 옛날 강릉과 한양을 이어주던 길이다. 신사임당과 율곡도 이 길을 넘어 강릉과 한양을 오고갔을 것이다. 대관령마을휴게소에 도착하니 그 많던 차량들도 대부분 빠져나가고,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풍차는 쉬지 않고 돌아가고 우리는 구절양장 같은 옛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으로 향한다.


※여행쪽지
▶‘선자령 풍차길’이라 부르는 강릉바우길 1구간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를 개조한 신재생에너지전시관에서 시작하여 양떼목장-2구간 갈림길-하늘목장사거리-선자령-동해전망대-통신탑을 거쳐 신재생에너지전시관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총거리 12㎞에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횡계IC → 456번 도로(옛 영동고속도로) → 신재생에너지전시관(대관령마을휴게소)
▶옛 대관령 상행휴게소인 대관령휴게소마을에는 육개장, 카레밥 등을 하는 레스토랑(바람의 언덕)과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스넥코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