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길이 되어준 여행의 사유들…색바랜 추억의 낱장을 넘기다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49> 라오스 나만의 ‘추억 일기’를 들추며

2015년 06월 17일(수) 20:18

박종석 作 ‘시앙꾸앙부다 사원의 불상’

어느덧 스피드보트는 바로 골든트라이앵글에 가까운 종점에 도착한다. 무사히 목적지에 데려다 준 선장과 감사표시로 포옹하고 악수를 나누며 헤어진다.

서양여행객들이 반대로 내려가고 집합되는 지점이라 많은 사람들로 분주하다. 지루했던 시간이지만 무사히 도착하니 여유롭다. 분류된 경계의 정취를 한곳에서 느끼니 피곤함도 덜어진다.

태국으로 입국해 간신히 구한 숙소에 도착한다.

늦은 밤이다. 캔 맥주를 마시며 김기호 박사가 말하기를 “어이! 나는 오늘 스피드보트 타고 오면서 모터의 굉음소리 때문에 죽는 줄 알았네. 귀가 멍멍하고 엄청 피곤하구만!” 하신다.

라오스 방비엔 사원 앞에서.

나는 즉시 반응해 답 한다 “형, 나는 모터 소리 하나도 못 들었는데요. 나는 스피드보트에서 잠도 자고 그림도 그리고 소낙비 맞고 와도 그 소리는 전혀 의식한 적이 없었는데요.”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형이 답한다. “그래, 자네는 고개 숙이고 잠도 잘 자더구만…”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우쭐함과 미안함에 그저 너털웃음을 짓는다.

김 박사는 고소공포증도 심하고 전쟁영화도 못 보는 마음여린 성품이라 모터소리와 함께 떠내려 오는 시신에 매우 놀란 모양이다.

‘파뎅산'

나는 강심장까지는 아니지만 불편을 즐기는 모험형이라…. 언제 다시 그곳을 두 번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라 여겼다.

그리고 대화는 이어진다. “형!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는데 그 소리를 듣는다면 귀청도 터지고 지구 밖으로 날아갈 것 아니오! 지구가 너무 빨리 자전하니 무극(無極)의 소리라 안 들린 것일 뿐, 신경을 쓰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릴텐데요? 왜! 신경을 배 모터의 소리에 초점을 맞추셨나요? 스스로 수용한 원인에서 결과로 나타난 현상 아닌가요?” 하고 반론을 제기하니 형이 말하길 “너는 참으로 현학(玄學)적이다”고 한다.

‘산꽃’

서로 껄껄껄 박장대소 한다. 사실 나도 굉음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별로 의식하지 않은 것뿐이다.

힘든 장거리 이동에서 생겨난 여담이지만 아마 메콩강이 아니었으면 오래된 추억 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통화 중에 그 이야기를 되새기다 보니 형이 말하길 “내 어록인데,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고 있으나 과거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찮은 일화이지만 묵은 세월이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고, 또한 오늘도 내일 다시 보면 역사일 수도 있다.

‘화필여로’

13년 전의 화첩에 그림을 그려 형에게 선물한 것이 얼마 전 등기 소포로 다시 나의 손에 들어왔는데 당시에 보고 느낀 흔적들이 비록 빛은 바랬지만 새로운 감회를 전한다.

바로 그러한 기록화가 자유인의 의미라 생각된다. 예전의 그 길이 이제는 문명의 축적으로 인해 호화롭게 변했으리라.

TV로 보니 라오스 사람들과 도시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모든 사물은 늘 변한다. 나 또한 귓가에 흰머리가 늘고 얼굴도 변했다. 지구도 세월 앞에 나이를 더하듯 라오스 주변의 메콩강 황토물도, 강변의 오지 사람도 당연하게 변화됐겠지만, 과거가 현재의 등에 얹혀 발효차처럼 어렴풋이 기억되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