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역사에 평화로운 미래 있다 배진하 광주 남구의원 답사기광복 70년, 나가사키 일제 강제징용 현장을 찾아서<3·끝> 강제징용 역사 근대화 가면 쓴 채 세계문화유산 추진 제대로 된 일본 역사인식 조선인 원혼 풀어주는 열쇠 kjdaily.com

2015년 06월 21일(일) 20:32

일본 역사 기행에서 방문한 호국사(사진 위)와 방공호(사진 아래). 호국사는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잡혀와 승려가 된 여대남이 창건했다. ‘방공호’는 격자형으로 문 앞에서 폭발물이 터져도 안쪽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게 만들어져 눈길을 끌었다.

◇일본 유네스코 산업문화유산 등재, 그 씁쓸한 과거=가톨릭회관 숙소를 정리하고 운젠지역으로 이동한 6일,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지는 아니지만, 나가사키에 위치한 영국인 상인 글로버의 주택과 사무실도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인 한 곳이다. 일본 최초로 서양식 채탄법을 사용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영국 무역상 토머스 글로버가 세운 건물과 정원이 밀집해 있는 ‘그라바엔’은 일본중요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서양식 건물이 있다. 시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서양식 건물들을 이곳으로 옮겨 완벽하게 재현해 놓아 당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어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토머스 글로버는 다카시마 탄광 개발과 무기, 선박사업으로 돈을 벌었고, 국제적인 감각을 익혀야 한다며 일본젊은이들의 유학을 주선하기도 했는데, 이토 히로부미도 그 혜택을 입은 사람 중 한명이라고 한다. 일본은 글로버를 일본근대화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떠받들며, 글로버의 옛 주택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데,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입구에서 잠깐 멈춰선 ‘오우라 성당’은 1597년에 순교한 26명의 포르투갈 선교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1597년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크리스챤 선교사와 신자 26명이 처형됐는데, 첫날 방문한 ‘26 카톨릭 성인 순교지’와 함께 이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일본 국보로 정식명칭은 ‘일본 26성 순교자 천주당’으로 고딕양식의 일본최고의 성당이며, 26 성인 순교사건은 일본 최초의 대규모 순교 사건임과 동시에 그 후 이어지는 처절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적인 서막이기도 했다.

역사기행 마지막날은 호국사, 오오노코바 소학교와 오무라 수용소, 오무라 해군 공창터와 방공호 일정으로 마무리됐다.

호국사는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잡혀와 승려가 된 여대남이 창건했다. 여대남은 경상남도 하동사람으로 양반집 자제였는데 1593년 당시 13세의 나이로 일본군의 포로가 돼 끌려왔다. 일본에 잡혀와서 불문에 출가하게 되고 일요라는 법명을 얻어 쿠마모토의 본묘사의 삼대 주지가 됐다고 한다. 이후 1651년 호국사를 창건하고 79세로 입적하여 본묘사에 묻혔다. 지금 본묘사에는 여대남이 조선에 사는 아버지와 주고 받은 편지와 몇 점의 묵서가 전해지고 있으며, 여대남 부자가 주고받은 편지는 400년 전에 직접 쓴 진본으로 현재 일본 불교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현재 주지스님이 여대남의 일대기와 함께 매년 여대남의 부모님 기일을 맞아 하동을 찾아 제를 모시고 있으며, 하동에서도 여대남을 높이 칭송하며 알려져 있다고 했다. 당시 여대남과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글에서는 얼마나 조선을 그리워하고 꼭 조선 땅을 밟으리라 아버지와 약속했던 그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아리면서 끝내 이루지 못한 그 약속을 지금은 일본인 후대가 이어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민간의 작은 움직임들이 쌓여져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는데 그 주춧돌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평화로운 미래…기억하는 역사에서 출발한다=조선인 강제 징용 현장이 근대문화유산이라니, 제국주의 산물을 유네스코 등재한다니, 해결되지 못한 역사의 현장 앞에서 답사단은 많은 생각들을 했다. 석탄 채굴과 제철, 조선 산업 현장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명을 잃은 곳이다. 한국 등 각국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을 무시하고 국가주의적 관점만으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미화하거나 그 시대의 아픔을 무시한 채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오히려 근대산업 유적을 역사유적으로 보전해 당시 징용돼 희생당한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일본정부는 메이지 시기만을 대상으로 국제적으로 산업유산으로 등록하고 싶다고 제시했지만 1910년 이후에 일어난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강제노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을 찬양하고 선전하는 일본,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근대화만을 강조해 관광자원화하는 일본, 메이지 시기만을 주목하고 근대화, 산업화만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각으로 역사를 제대로 계승할 수 있을까? 산업혁명과 함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당한 우리는 그러한 역사 계승 방법에 결코 공감할 수 없다. 조선민중들이 받은 고통과 슬픔의 역사가 제대로 계승돼야 한다. 침략과 과거 역사를 청산할 준비가 돼 있을 때, 역사를 기억하는 그 시점이 비로소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나가사키 지역 답사 일정을 마치면서 이 역사적인 현장을 언제 또다시 찾게 될지 모르지만, 사키토 탄광의 조선인 숙소 터에 새겨놓은 돌탑의 염원처럼 제대로 된 일본의 역사인식으로 강제노역으로 잠든 수많은 희생자의 원혼이 편히 잠들길 바래본다. /jina-105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