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달, 보성에서 이순신을 만나다 조선수군 재건 병참 확보 남다른 인연 맞춤 마케팅 읍성관아 누각 열선루 ‘한산도가’ 무대로 규명 필요 구국의 성지 역사유적 복원 관광자원화사업 잰걸음 김종민 기자 kim777@kjdaily.com

2015년 06월 22일(월) 20:34

보성은 이순신 장군이 ‘가장 위대한 승리’로 평가받는 명량해전의 승리를 위해 수군을 재건할 시기에 군사와 군량미 확보의 거점이었다. 구국 행보에 떨레야 뗄 수 없이 가장 각별했던 곳이다. 사진은 보성군청 신축 과정에서 발견된 옛 읍성터 석조유물과 장군이 머물고 구국의 결의를 다졌던 열선루의 초석(주춧돌)./보성군 제공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방책이 있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지만 미천한 신이 죽지 아니했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가벼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전쟁에 참가하라는 선조 임금의 권유에 비장한 장계를 작성했던 곳이 보성 관아의 누정이었던 열선루였다. 특히, 최근 학계에서는 군사 지휘소였으며 침소였던 열선루를 그 유명한 ‘한산도가(閑山島歌)’를 읊었던 장소로도 거론하고 있다.
난중일기의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볼때 보성은 백의종군, 명량해전의 승리를 위해 수군을 재건할 시기에 군사와 군량미 확보의 거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라좌수영 의승청 소속의 의승수군 400여명이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어 승병들의 역할 또한 컸던 곳이다.

충무공의 충혼이 서려있는, 예로부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절을 다 바친 충의열사를 많이 배출한 보성이다. 그래서 의향(義鄕)이고, 또 예향(藝鄕, 서편제)과 다향(茶鄕, 녹차)을 더해 ‘3보향(寶鄕)’으로 일컬어지고도 있다.

이순신과 또 다른 인연도 얘기거리다. 20세의 나이로 군수를 지낸 방진(方震, 1514~?)의 무남독녀 외동딸과 결혼, 사위가 됐다는 것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 장군의 구국 행보에 떨레야 뗄 수 없이 가장 각별했던 보성이 충절의 고장으로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보성읍성터와 열선루 고지도.

◇“한산도가의 무대는 바로 열선루”

1795년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1권에 한산도가가 남아있다. 1595년 8월 중추절 무렵 한산도 제승당에서 나라사랑의 충정으로 수루에 홀로앉아 감회에 젖어 먹을 갈아지은 시로 알려졌다.

하지만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지낸 서지학자 고 이종학씨는 1597년 8월 15일 열선루에서 지은 것이라 주장하며 한시 원본을 공개한 바 있다. 선조 임금이 내린 밀지를 선전관을 통해 받아보고 조정에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장계를 올린 뒤 착찹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싸늘한 산과 바닷섬 달만이 밤을 밝히는데(寒山島月明夜) 홀로 수루에 올라 큰칼 쓰다듬으려니 근심이 깊어지네(上戍樓 撫大刀 深愁時) 어디서 들려오는가 가녀린 피리소리(何處 一聲羌笛) 근심만 더하여라(更添愁)’.

이씨는 난중일기의 기록을 상당한 근거로 들었다. ‘비 오다가 저녁나절에 맑게 개었다.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열선루에 앉아있으니, 선전관 박천봉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8월 7일에 만들어진 공문이었다. 영의정(류성룡)은 경기 비장으로 나가 순시 중이라고 했다. 곧 잘 받들어 받았다는 장계를 썼다. 보성의 군기를 검열하여 네 말에 나누어 실었다.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잠을 자지 못했다’고 써 있다.

이순신이 순국 하루 전날(1598년 11월 18일)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에게 보내진 것이라고 하는 증거는 ‘진도독합하’(陳都督閤下)라는 서신의 제목이 붙어있고 말미에 ‘정유 중추 이순신음’(丁酉仲秋李舜信吟)이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씨는 충무공 친필의 한산도가를 1998년 국립 현충사에 기증했다.

읍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 장군의 군사 지휘소였으며 침소였던 열선루. 최근 학계에서는 그 유명한 ‘한산도가‘를 읊었던 장소로도 거론하고 있다. 복원 가상도

◇보성읍성 석조유물 발견 화제

이 장군의 보성에서의 활약상에 대한 관심은 특히 열선루 주춧돌을 포함한 보성읍성 석조유물이 발견됨으로써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009년 군청 신축공사 과정에서 옛 읍터에 사용된 4개의 활주석과 9개의 외벌대(댓돌)가 확인됐고, 2014년 보성초교-부평간 도로개설공사 중 초교 부지에서 구국의 결의를 다졌던 열선루의 초석(주춧돌) 4기가 드러났다.

열선루는 2층의 목조건축물로 읍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휴식 또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용도다. 전면 5칸 축면 4칸 크기로 광한루, 촉석루, 희경루 등과 겨루는 조선을 대표하는 크고 아름다운 관아 건축으로 추정된다.

보성읍성 건축물은 정유재란때 화재를 입어 모두 소실된 것을 이후 복원돼 1872년까지 남아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폐성되는 비운을 맞았다. 1960년대까지 읍성의 열선루 및 읍성내의 초석, 지대석, 장대석 등 성(城)돌이 주변에 있었으나, 학교 운동장에 있던 연못 매립을 위해 사용되면서 대부분 묻히게 됐다.

이에 보성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복원 사업’을 본격화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난중일기를 근거로 보성에 머물렀던 행적을 고증·정비하고, 역사문화자원을 발굴·복원하기 위해 전남대 호남학연구원과 계약하고 기초조사를 시작했다.

대상은 열선루를 포함해 백사정, 군영구미 현장 및 역사적 고증, 복원장소 물색, 임진왜란-일제 강점기 의병 관련 내용조사 등이다. 다음달 용역 최종보고회를 예정하고 있으며, 하반기 전남도 투자심사를 위뢰한 뒤 통과되면 내년부터 열선루 복원공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또한 2014년부터 사업비 6억5천만원을 들여 ‘조선수군 재건로 조성 사업’ 추진 일환으로 장군이 군사와 무기 군량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한 벌교역, 조양창 김안도의 집, 박실마을 양산원의 집, 보성군청(열선루), 회천 군영구미 등에 안내표지판 설치와 군학마을 상징조형물 설치 및 상유십이(尙有十二) 장계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순신 유적복원·인문학 강좌 눈길

보성군문화예술회관에서 이달 초 전남도립도서관이 주최한 ‘지혜의 샘 인문학 강좌’는 공무원, 직장인,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보성과 이순신’이라는 주제로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노기욱 교수는 백의종군해 조선수군 재건 과정 중에 보성에서의 10일간의 행적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강의했다.

올해 처음으로 제41회 보성다향대축제 기간 중에는 보성불교사암연합회 주관으로 ‘충무공 이순신 호국 다례재’를 경건하게 열었다. 천년고찰 대원사의 햇차를 헌다함으로써 호국이념을 아로새기고, 보성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보성에는 임란 유적이 산재해 있다. 이 중 비봉리 선소(船所) 알섬(지금의 득량도)에서는 왜군과 대치하던 중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식량을 조달했다. ‘식량을 얻은 곳’이라는 뜻의 득량(得糧)이라는 땅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 과정은 구례에서 군관 9명과 병사 6명으로 시작해 곡성, 순천, 보성으로 이어졌다. 조양창과 양산원의 집을 비롯 열선루, 백사정, 군영구미가 보성에 바로 속한다. 회천면은 군영구미와 백사정이 있는 역사적 장소다.

장군은 보성에 머물면서 군관, 관원, 백성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수군을 재건했다. 군량, 군선, 군사, 군기 등 병참 물자를 확보해 바다로 나갔다. 12척의 전선으로 일본 적선 133척을 맞아 승리한 명량해전은 ‘준비된 승리’였다.

군 관계자는 “국난 극복의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던 보성의 역사적 의미를 재차 정립함으로써 지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 이순신 관광포인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보성=임병언 기자

/김종민 기자 kim777@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