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의 아름다운 인연들…소소한 추억들이 모여 만든 그리움 박종석 화백의 화필여로 <50>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 인연과 추억들 kjdaily.com

2015년 06월 24일(수) 19:15

박종석 作 ‘하늘이 나를 보다’

여행 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가끔 닥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후일에 생각해보면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자 술자리의 좋은 여담이 되기에 충분하다.

언젠가 세계 3대 장수촌인 파키스탄 훈자를 가기 위해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길기트의 거친 산길을 지날 때 일이다.

때때로 거대한 암석이 도로에 떨어져 길이 막히기도 한다는 이 코스는 내심 불안한 여정이다.

폴로나루와 자전거 수리가게에서.

버스가 산길을 달릴 때 큰 암반석이 떨어졌다. 큰 바위는 다행히 버스를 피해 골 깊은 하천으로 떨어졌다. 순간 승객들이 안도의 한숨소리를 내쉰다.

참으로 운 좋은 순간이라 생각되면서도 생사가 일순간에 나누어지는 아찔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스리랑카 북부의 폴로나루와로 가기 위해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파도치듯 힘겹게 이동할 때이다.

비가 거칠게 내리고 바람도 꽤 불었는지 어느 시골길 도로에 잎이 무성한 큰 나무가 쓰러졌다.

통행이 마비되고 소형차가 도로 옆길로 빠져나가지만 진흙길이 돼 대형차들은 진행을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동네 청년들은 소형차를 밀어주고 수고비를 받는다. 막힌 양쪽 도로에 많은 차들이 즐비하게 정차할 수밖에 없었다.

‘차밭 동네’

시간이 흐르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전기톱이 동원됐다. 2시간 이상 지나서야 그 큰 나무는 조각나 철거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여행자들과 동네사람들이 힘을 합친 결과 길이 뚫리고 겨우 차량통행이 가능해져 우리도 밤 늦게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하지만 비는 쏟아지고 숙소는 잡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서야 버스에 배낭 하나를 두고 내린 사실을 알았다.

다들 멍하니 고민만 하고 있는데 현지 동네 친구가 기지을 발휘해서 우리를 도와준다.

구마르라는 친구와 함께 오토릭샤를 타고 그 차를 5㎞ 정도 뒤쫓아 가보니 버스 종점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하고 배낭을 건네받고 다시 오토릭사를 타고 돌아온다. 두달간 6명의 일행에게 필요한 식량이 들어있던 배낭이다. 우리에겐 가장 귀중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배낭을 되찾으니 잠시 가출한 자식을 되찾은 느낌이다.

배낭을 찾게 해준 친구는 현지인인 39세의 구마르라는 청년이다. 그는 1994년부터 2년 간 마산의 주물공장에서 근무했는데 차분한 성품에 한국말도 유창하고 농담도 잘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현재는 한달에 100달러도 벌지 못하며 산다고 한다. 그래도 농사 일과 가이드 일을 병행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

‘매운탕의 추억’

인구 2만명의 작은 소도시에 20㎞가 넘는 대형 호수가 있다. 다음날 그 친구의 안내로 낚시를 해 매운탕을 끓여서 저녁식사에 구마르를 초대했더니 너무 좋아하며 한국생활이 기억이 난다고 한다.

한가한 도시에서의 즐거운 생활이 서서히 정들 때가 되니 떠나야 할 때이다. 이곳에 도착하는 과정이 꽤 힘들었지만 다시 또 힘든 이동이 기다린다. 음미해보면 세상살이가 늘 순탄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문득 순탄하지 않은 삶을 선택해 삭발승이 되어 유랑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문을 남겼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사청사우(乍晴乍雨 )’ 시가 떠오른다.



개었다 비가 오고 오다가 다시 개니

(乍晴乍雨雨還晴)

날씨도 이렇거든 세상인심 어떠하리

(天道猶然況世情)

날 좋아하던 이가 나를 문득 미워하고

(譽我便應足毁我)

공명(功名) 싫다하든 사람 공명 찾아 헤매는

(逃名却自爲求名)

꽃이야 피건 지건 봄철은 알리 없고

(花開花謝春何管)

구름이 오고가든 산은 그리 탓을 않네

(雲去雲來山不爭)

여보게 사람들아 새겨두고 잊지 말게

(寄語世上須記憶)

두고두고 구하여도 부귀영화 어려우리

(取歡無處得平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