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우 예술가의 슬픈 죽음 김유미의 커튼콜 아시안발레단 단장

2015년 07월 02일(목) 19:58

지난달 25일 연극배우 고 김운하의 노제가 열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슬픈 소식이 들렸다. 두 명의 가난한 예술가가 극심한 가난의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는 소식이다. 무명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고시원에서 사망한 지 5일 만에 발견됐고, 독립영화 배우인 판영진씨는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비보들이 들릴 때마다 각계각층의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나 다른 이슈가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고 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도 여·야의 의원들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혹자는 영화와 드라마, 광고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아이돌을 투입함으로써, 연기를 전업으로 하는 사각지대 안의 예술인들의 입지를 어렵게 하는 일을 꼬집어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골목상권에 진입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심한 질타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고 최고은 작가의 사건이 있은 후, 국회는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해 생계가 어려운 예술인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재원과 까다로운 선정 기준 등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다가, 관련 기관과 실무자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방송 연예계는 또한 어떤가? 아이돌 배우들과 유명 연예인, 심지어 그 자녀들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차지하고 있고, 연기력보다는 재력이나 기획사의 파워에 의해 출연기회를 결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연기력보다는 유명세를 좇는 시청자들의 못된(?) 버릇도 크게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문제의 원인은 어느 한 곳에 집중돼 있지는 않다. 해마다 반복되는 불행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사각지대를 먼저 고려해 형평성있는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할 책임은 국가기관과 지자체에 있다. 지역의 무명 예술인들을 수시로 발굴해 지역 중심의 프로그램에 다양하게 활용함으로써 그들의 입지를 넓혀주고, 방송의 질을 높이는 것은 방송관계자들의 몫이다. 또한 자신이 즐기고자 하는 문화예술공연이나 행사에 자신의 지갑을 기꺼이 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타인의 무형 재산을 향유하고자 하는 관객의 당연한 의무다. 지위와 친분 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초대권을 받아 공연에 참여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적 관행이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구약성경 신명기에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무거운 맷돌을 돌리면서 곡식을 탈곡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 일하다가 허기져 눈에 띠는 알곡을 먹게 되는 일을 막지 말라는 뜻이다.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목사들은 직업을 갖지 않고 교인들이 내는 헌금으로 생활하게 하는 것은 그 같은 맥락에서다. 일 하는 자에게 그에 합당한 수입을 보장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영어로 salary라고 불리는 봉급의 어원은 라틴어 sals, 즉 소금이라는 말이다. 로마제국의 병사들이 자신의 먹거리와 무기를 지고 행군을 하다가 많은 땀을 흘려 탈진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에는 수입품이었던 소금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얼마간의 급료를 지급했는데, 그것이 서양사 최초의 급료였다고 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수고에 대해 그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다소 조심스러운 말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의 최종적인 책임자는 연기자 자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 소리에 지가 미쳐가지고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것이 소리 속판이여! 이눔아!”라고 일갈했던 ‘서편제’의 주인공 유봉의 대사는 이제 좀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자신과 가족을 책임지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여러 동료들과 지혜를 모아 자신의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끊임없이 강구해야 하는 것은 어쨌든 예술가 자신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시안발레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