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의 실종, 정치 전략의 부재 본사 사장 nam48@kjdaily.com

2015년 07월 08일(수) 20:33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이 발표한 여론조사는 호남정치의 대혁신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이 시행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전북도내 국회의원 지역구 11곳 중 무려 10곳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이름도 없는 가상 ‘호남신당’ 후보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는 새정치연합 후보와 앞으로 탄생할 수 있는 호남신당의 후보, 아니면 무소속 후보 중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묻는 것으로 진행됐는데, 전북 11개 지역구 중 90%이상이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을 거부했다. 이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전북도당 위원장과 국회의원들만 돌려보고 함구를 명할 정도로 충격이 크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전북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얘기하는 이유는 광주와 전남도 같은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바로 같은 설문으로 광주·전남 지역민을 대상 여론조사를 해도 전북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90%이상 물갈이를 원한다면 반성 촉구 차원을 떠나 정말 냉엄하고 준엄한 꾸짖음이며 개혁의 절실함을 반영한 것이다.

필자는 호남 민심이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는 이유가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제대로 지역민심을 섬기지 않고 지역현안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 때문’이라고 본다. 국책사업 경우 중앙정치 무대에 선 호남 국회의원의 역할에 따라 그 크기와 내용, 질이 달라지는데, 매번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해 지역에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직 축소 방치다.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 직제 축소는 호남정치권의 정치협상력의 실패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운영인력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책임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규모가 크게 축소된 문화부 직제 개정안이 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을 보면 직제와 정원은 1전당장 4과, 정원 50명으로 이는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당초 구상했던 1전당 6과, 정원 112명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다. 특히 문화전당을 운영할 인력 50명도 신규로 증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 직원 40명 가운데 32명을 이관하고 추진단은 8명만 남아 업무를 보게 돼 사실상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인력구조다. 5조 규모의 국책 사업을 이 숫자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국책사업의 대규모 축소와 포기로 해석된다.

그러면, 국무회의에 이 개정안이 상정되기 전에 새정치민주연합 지역 국회의원은 그 사실을 몰랐나. 알았다. 알고 나서 한 일은 반대 성명서를 내고 지역 시민단체와 반대 피켓을 높이 든 다음, 문화체육관광부에 항의하는 수준이었다. 정부나 대통령, 청와대, 새누리당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등 국회차원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내려와 시민을 부추겼다. 지역민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 보여주며 정부를 압박할 뿐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은 국가가 20년 이상 중장기 계획을 세워 특별법까지 만들어놓은 국책사업이다. 국가가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일반기업이 하기 힘든 정책적 사업이거나 경기부양과 인력창출을 위한 목적으로 할 때다. 일반 기업이나 지자체가 하려면 당장 수익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어렵지만 국가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미리 중장기 계획 하에 사업을 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이 반대한 ‘4대강 사업’의 경우 15조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국책사업이란 미명하에 진행 중이다. 4대강 사업 같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국책사업도 수백억의 홍보비를 들여 국민을 설득해가면서 흔들림 없이 수행하고 있는 정부가 국민적 저항도 없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국책사업을 스스로 후퇴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나라 큰 국책사업 4대강, 청계천, 인천국제공항, 포스코, 새만금 등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거의 없다. 경제성이 없다, 환경훼손이다 등 이유로 시민사회 반대가 거셀 때도 국책사업의 존엄성과 국가발전이라는 큰 의제를 주장하며 밀어붙였다. 하물며 다른 지자체의 시기질투 외에 큰 반대가 없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을 정부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것은 사업 추진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애초 아시아문화전당의 관람객 소비 지출과 연관 투자 사업을 통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2조7000억원에 이를 것이고, 전당의 상시 고용 인원 1000여명을 포함해 3만5000여명의 취업 유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아시아문화전당을 민생과 직결되지 않고 국민세금만 가중시키는 사업으로 결부한 것은 자가당착이다’고 비판한 바 있다. 기존 우리나라 국책사업이 개발위주 개발정책이었던데 반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은 21세기 지구촌 화두와 맞는 문화산업인데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국정목표와 가장 부합한 사업이란 점에서 ‘후퇴’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 종래의 국책사업이 미성숙한 돌진형사업이었다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은 광주의 장점을 서울과 융합시켜 대한민국의 문화융성시대 도래를 이끌 수 있는 국가전략사업이 될 수 있다. 왜 이런 논리로 설득하지 못했나.

국회 120석이나 되는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특별법 개정 때도 미온적인 태도로 호남인의 분노를 샀지만, 이번에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이런 대형 국책사업의 축소를 미리 알고도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성명서 발표 외에 큰 틀에서의 전략이 없었다. 고도의 정치적 전략을 세워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게 장외에서 소리만 쳤다. 이 정부의 판단방법과 선택방법을 연구하지도 않았고 미리 대안을 만들어 방어책을 구사하지도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호남 민심이 싸늘해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공무원이다./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