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경(漫畵景, 만화책이 있는 풍경) 서기원 |
| 2015년 07월 29일(수) 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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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지쳤던가. ‘어제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 ‘미묘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스스로 무기력 하게 만드는 마음의 감옥’
그런 여러분에게 오롯이 자신만을 위하여 하루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내겠는가? 어떤 이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보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여행을, 영화를, 독서를, 등산을, 골프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내 생각나는 함께하고픈 그리운 사람들. ‘가족, 연인, 혹은 친구들’
인간은 고독한 존재지만 왠지 고독한 내가 싫다. 나와 같은 시간·공간에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분화되어, 또 다른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런 그들을 나의 세계(인생)로 초대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리고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철이 들고부터 지금까지 궁금해 한 것은 단하나,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광장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 달동네에서,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흥정하는 모습, 화를 내는 모습, 웃는 모습, 우는 모습, 심각한 모습, 얼빠진 모습’을 보았고, 그중 ‘웃음이 어색한 사람, 우는 것이 서툰 사람, 위화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만 안도감을 느낀다. 익명성의 바다 속에서만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다. 또한 외로운 풍경같이 존재하며 지켜보기를 좋아했던 나.
그런 나에게 하루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만화방’을 찾을 것이다. 문을 열면 ‘딸랑’하는 방울소리, 익숙한 아줌마의 눈인사, 요금표는 ‘시간: 1,200원, 12시간: 7천원, 하루: 만이천원, 정액은 선불, 감사합니다.’
사방이 만화책으로 채워진 3중, 4중의 책장으로 가려져 햇볕도 그만 숨죽이고, 환기가 되지 않은 공기 속에는 ‘라면냄새, 김치냄새, 담배냄새, 그리고 땀 냄새’가 섞이어 오히려 푸근한 인간 냄새가 나는 곳.
핏기 없이 창백한 노숙자, 넥타이를 맨 중년남자, 교복을 입은 학생, 하얗게 센머리의 노인까지 소파마다 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익명성의 자유로움, 고독한 외로움이 흐르고 있다. 나도 그만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그곳에는 액션, 무협, 학원, 순정, 스포츠, 19금에 이르기까지 봉인이 해제되기만을 기다리는 상상력의 날개가 있다.
어렸을 적엔 ‘느꼈다’면, 어른이 돼서는 ‘생각하게’ 되었다. 머리를 보면 꼬리를, 사람을 보면 근대를 저울질했다. 생각이 많다는 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만화책은 보여준다. 그냥 느끼게 해준다. 그림으로, 여백으로, 나레이션으로.
탁자위에 두발을 턱하니 걸쳐도 좋고, 소파위에 벌렁 드러누워도 좋다. 시간쯤 혼자 흐르게 내버려둬라. 몇 권을 읽은들 대수이랴.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김치에 라면.
반쯤감긴 몽롱한 눈으로 만화책을 이마위에 ‘톡톡’ 두드리면 잃어버렸던 소중한 기억들, 감각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세포들은 공간을 향해 열리고 무수한 느낌이 나를 지배한다. 전율이 흐른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