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인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08월 12일(수) 19:15

최근에 여성독립운동가의 활동을 그린 영화 ‘암살’을 보았다.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만주 이청천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과 작전을 위해 암살단을 불러모으는 냉철한 임시정부 김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경무국 대장 염석진, 돈만 주면 국적 불문, 나이 불문 누구든지 처리해주는 상하이의 청부살인업자 등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필자는 영화 ‘암살’ 주인공 안옥윤을 통해 여성독립운동가의 존재감이 부각된 것은 참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남성은 약 1만4,000여명이다. 이중 여성은 250명 정도다. 깊이 생각해보면, 그 많은 남성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는 누가 했겠나. 단순히 밥만 해준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싸웠을 것이다.

광복 70년이나 되는 올해는 여성의 독립운동사도 새롭게 쓰여야 한다고 본다. 가부장제 사회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할이 조명 받지 못하는 것은 역사차별이다. 지난 70년간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 가운데 유관순 열사만 거론해온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대한민국 여성독립운동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최근 영화 ‘암살’에 소개돼 관심을 모은 약산 김원봉의 부인으로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던 박차정 여사도 있다.

광주·전남에도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다. 필자는 이분들 중 윤형숙·최현숙 열사를 조명한 적이 있다.

윤형숙 열사는(1898-1950) 순천 매산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수피아 여고에 입학, 1919년 서울에서 3·1독립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3월10일 장날을 기해 1,000여명의 군중 맨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일본군경들이 해산 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굴하지 않았다. 일본 헌병들이 군중을 향해 발포를 했다. 일본 헌병들이 총을 쏘며 달려들어도 동요됨이 없이 군중 앞에 서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계속했다. 잔악무도한 일본 헌병이 군도(軍刀)로 윤형숙의 왼팔 상단부를 잘라버렸다. 잠시 쓰러진 윤형숙은 땅에 떨어져 있는 태극기를 다시 오른팔로 잡고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광경을 지켜본 군중들이 비분강개하여 더욱 맹렬하게 시위를 계속했다. 이로 말미암아 3월10일부터 있었던 광주 만세운동은 호남 전 지역으로 확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제2의 유관순이다.

필자가 취재했던 또 한 분의 여성독립운동가는 광주 최초 지방 여기자 최현숙(1904-1984)이다.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의 어머니인 최현숙 열사는 수피아학교 3학년때 3·1운동이 일어나자 박애순, 전신애씨와 함께 주동이 되어 밤새 태극기를 그렸다. 광주에서 일제히 봉기하기로 된 날인 3월10일 머리를 땋고 끈으로 맨 뒤 짚신을 신고 수피아 여학교에서 광주시장까지 가면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광경에 놀란 왜경과 일본헌병들이 채찍으로 등짝을 치고 발길로 차는 등 온갖 행패를 부리면서 잡아들였다. 최현숙 역시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다. 그때 일본 경찰이 ‘만세를 부르게 한 주동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동자는 나다’고 당당히 말하면서 ‘애국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만세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2개월여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최현숙은 머리를 많이 맞았다. 나중에 그 후유증으로 50세 가깝도록 머리에 끈을 질끈 매고 살아야했다. 감옥에서 나온 최현숙은 야학을 가르치는 주민 계몽사업을 계속했다.

역사 속 한국여성독립운동가는 현대인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이들의 행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뚜렷하다. 그들은 ‘민족독립’을 위해 몸부림쳤던 우리민족의 또 다른 모습이자 시대의 장벽에 당당히 맞서며 저항의 움트임 주체였다. 아마도 그것은 미래 한국여성의 진취적이고 거국적인 행보를 함축한 것이었다. 지역·연령·활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구국활동으로 자유와 평화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저항의 소리였다.

이제 시대의 장벽, 그 한계를 향해 소리치며 일어섰던 한국여성의 내적인 힘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의 또 다른 주체인 그들이 시대 장벽을 넘었던 외침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인권과 시민권의 평등을 지향하며 투쟁했던 세계여성들은 억압된 사회구조와 시대장벽에 대항하며 치열한 저항을 해왔다. 그 흐름 속에 한국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격동의 한 세기라고 함축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그 시기에 항일투쟁을 일관했던 한국여성독립운동가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역사적인 제 대접을 해줘야 한다.

광복 70년 ‘그때’와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모자랄 만큼, 몰라보게 달라졌다. 눈부시게 발전했다. 전쟁 폐허 속에서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던 최빈국 한국은 산업화로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수출 세계 6위 국가로 일어섰다. 그러나 이런 빛나는 조국을 바라며 기꺼이 희생했던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지금도 이름까지 땅에 묻혀있다. 여성독립운동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여성’에 멈춰있다.

영화 ‘암살’의 여성독립군 총잡이 안옥윤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인가. 올해 8·15 광복절에 광주·전남 여성계라도 윤형숙·최현숙 등 지역 여성독립운동가 묘를 찾아주기 바란다. 열사의 피를 딛고 서 있는 우리는 그분들을 진정으로 ‘광복’(光復)시켜드려야 할 책무가 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도 미래가 없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