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련소만 있던 공업 섬→‘현대예술 로망’ 탈바꿈 전남 ‘가고 싶은 섬’ 을 꿈꾼다 <8>황무지서 ‘예술 섬’ 변신한 나오시마 제련소 배출가스에 민둥산 전락 베네세 그룹 아트프로젝트 추진 핵심 건축물 조성에만 18년 걸려 땅 속 시설물에 거장들 작품 전시 섬이 미술관이자 미술관이 곧 섬 매년 40만이상 관광객 몰려 북적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2015년 08월 12일(수) 20:16

미야노무라항 지중미술관 카가와현 다카마츠 항구에서 약 1시간여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면 나오시마 미야노무라항에 도착한다. 미야노무라항 한켠에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야요이 구사마의 ‘빨간 호박’ 작품이 설치돼 있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객선이 항구에 도착하기 전인데도 나오시마 방문객들이 ‘빨간 호박‘을 앵글에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여념이 없다./일본 나오시마=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카가와현 섬 관련 정책을 살펴보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섬이 바로 나오시마(直島)다. 나오시마정(町)은 나오시마를 비롯한 세토내해(瀨戶內海)에 있는 섬 27개로 구성돼 있다. 섬들은 카가와현 다카마츠시에서 북쪽으로 13㎞, 오카야마현의 다마노시에서 남쪽으로 3㎞ 지점에 있다.

나오시마는 나오시마정의 중앙에 위치하며 동서 2㎞, 남북 5㎞, 주위 16㎞로 섬 전체가 노화한 화강암과 풍화토로 덮여 있는 구릉성 섬으로 평지가 적다. 나오시마는 1917년 ‘미쓰비시 머티리얼 나오시마 제련소’가 들어서면서 공업 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금과 동을 제련해 왔으며 지금도 금 생산량은 일본 내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제련소 배출가스로 섬의 수목 대부분이 시들어 죽어갔다. 한마디로 나오시마는 민둥산으로 전락했고 ‘아무도 찾지 않는’ 황폐화된 섬이었다.

◇베네세그룹 후쿠타케 회장의 꿈 오롯이=통상 민간의 섬 개발이라고 하면 리조트를 중심으로 한 고급 휴양지가 떠오른다. 국내의 경우 신안 증도 엘도라도, 경남 남해, 충남 안면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와 달리 나오시마는 확연히 다른 접근방식을 보인다. 나오시마에 주목한 사람은 일본 학습지 시장 1위인 베네세그룹의 후쿠다케 데쓰히코 창업자였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사업 영역을 유아에서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보는 참고서 생산에 국한했다.

1980년대 중반의 일본 사회는 고령화가 본격화되던 시점. 신(新)성장동력을 찾아야 했고 기업 이미지의 변화도 필요했다. 후쿠다케 데쓰히코 회장은 사회공헌활동은 물론, 기업 브랜드 가치를 키울 수 있는 사업 영역으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를 택했다. 후쿠다케 회장의 꿈은 세토내해의 섬에 온 세상 아이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1985년 후쿠다케 데스히코와 이야케치 카츠쿠 전 나오시마 정장이 의기투합, 나오시마의 변화는 시작됐다. 이야케치 카츠쿠 전 정장이 섬의 북쪽은 공업, 중부는 문화교류, 남쪽은 관광 산업으로 구분해 개발하려는 정책을 추진한 게 후쿠다케 회장의 구상과 일치한 것이다.

당초 나오시마에는 1989년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감수를 받은 국제캠프장만 문을 열었다. 현재 캠프장은 없어졌지만 10년 동안 2만명의 아이들이 다녀가는 등 나오시마 프로젝트 성공의 단초가 됐다. 후쿠다케 회장의 꿈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셈이다.

사업이 갓 시작된 직후 창업자가 급서했지만 후쿠다케 소이치로 제2대 회장이 아버지의 유지를 물려받으면서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오히려 영역을 확장하며 속도를 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지중미술관 전경. 미술관의 모든 시설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후쿠다케 재단 제공(Chichu Art Museum, Photo=Fujitsuka Mitsumasa)

◇안도 타다오 손 거친 섬 자체 예술작품=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평소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아버지의 구상을 확대해 황무지에 가까운 섬을 탈바꿈시킬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켰다. 이를 위해 1987년 10억엔을 들여 나오시마의 절반 가량에 이르는 토지를 사들였다.

그의 머리 속에는 나오시마 전체를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다.

현재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베네세하우스 뮤지엄(미술관+호텔)과 베네세하우스 오벌(숙박 전용동), 지중미술관, 이우환미술관, 안도뮤지엄 등이다. 모두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다.

단순히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닌 안도 타다오의 손을 거치면서 건축물과 섬이 모두 예술작품이 됐다.

후쿠다케 회장이 안도 타다오에게 일을 맡긴 것은 오사카 출신인 그가 동경이 아닌 지방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나오시마 프로젝트 속에 반(反)동경 정서가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경을 중심으로 한 일본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에 반기를 드는 대신 ‘지방화’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췄다는 이야기다.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이상향 자리매김=베네세그룹은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안도 타다오는 1992년 베네세하우스, 1995년 베네세하우스 오벌, 2004년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 2010년 이우환미술관을 완성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핵심 건축물을 짓는 데에만 18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베네세하우스는 미술관과 호텔을 접목시켰다. 건물 안팎은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과거 염전이 있던 자리에 배치한 지중미술관은 명칭대로 건물을 땅 속에 묻었다. 지중미술관은 땅 속에 숨겨진 공간 속에서 모네와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 거장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우환미술관은 한국 작가인 이우환의 작품만을 전시하기 위해 맞춤형으로 설계됐다.

여객선을 타고 나오시마 미야노무라 항구에 도착하면 야요이 구사마의 붉은 호박이 선착장 옆에서 관광객을 맞는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지중미술관, 베네세하우스, 이우환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그 어떤 곳도 섬의 절경을 해치지 않는다. 섬 곳곳에는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자리잡고 있다. 섬이 미술관이고, 미술관이 곧 섬이다.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 대형 제련소가 있는 공업 중심의 섬이라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경관과 일체화된 건축물과 미술 작품만이 눈에 들어온다.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나오시마는 일본 관광청이 선정한 4대 관광지 중 하나다. 세계적인 여행잡지 트래블러(The Traveller)가 선정한 세계 7대 관광지 리스트에도 올랐다. 실제 매년 4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나오시마를 보기 위해 카가와현을 찾고 있다.

카가와현 다니구치 에이지 국제관광추진실장은 “베네세그룹이 만든 나오시마는 일본 내에서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로망’이 되고 있다”며 “민간 사업 영역이긴 하지만 카가와현 관광에서 나오시마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일본 나오시마=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