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을 멀리 날려서 그 날개에 묻혀보리라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145)

2015년 08월 17일(월) 19:44

登樓望膺 (등루망응)
물재 손순효
높은 다락 홀로 앉아 들판을 바라보니
뜬 구름 다 걷히고 매 한 마리 떴는데
천 층에 티끌 날려서 어느 것에 묻히랴.

獨坐危樓望四郊 浮雲捲盡一鷹高
독좌위루망사교 부운권진일응고
翩翩直上千層碧 那箇飛塵點羽毛
편편직상천층벽 나개비진점우모

누각과 정자를 혼동하는 경우를 더러 본다. 그러나 두 가지의 의미는 다르다. 누각과 정자는 기단부터 마루까지의 높이, 즉 종고(宗高)를 중요시 한다. 누각과 정자 사이엔 차이가 많아 1m 이상이다. 누각은 고상식으로 2층 집(이규보의 정의)이란 원형으로 되어 있다. 그 반면 정자는 대체로 저상식의 낮은 마루 양식으로 되어 있음이 특징이다. 높은 다락 홀로 앉아 사방 들판을 바라보니 뜬구름 다 걷히고 매 한 마리 높이 떴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티끌을 멀리 날려서 그 날개에 묻혀보리라(登樓望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1429-1497)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칠휴거사(七休居士)로 알려진다. 1453년(단종 1) 생원 때 증광문과에 1457년(세조 3)에는 문과중시에 급제했다. 장령 등을 거쳐 성종 때는 전한 겸 집의로서 17항목의 정책을 상소하여 채택되기도 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높은 누각에 홀로 앉아 사방 들판을 바라보니 / 뜬구름은 다 걷히고 매 한 마리만 높이 떴구나 / 훨훨 날아 곧바로 천 층의 하늘에 높이 오르거니 / 어떤 것이 티끌을 날려서 그 날개에 묻히랴]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누각에 올라 매를 보며]로 번역된다. 정자는 사대부들이 시 한수를 지어 놓고 서로 수창(酬唱)해 시정을 나누었던 반면, 정자는 평민들이나 아녀들이 햇볕을 피해 더위를 식혔던 곳이다. 그래서 정자는 지상에서부터 높고 누각은 낮다. 정자와 사랑방은 서민들의 애환을 같이했던 유일한 대화의 장소였다. 이런 점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좌찬성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렇지만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잘 알고 있듯이 청백재(淸白齋)라는 이름을 붙였듯이 누각과 다락을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올라 시를 지었던 것 같다. 높은 누각에 홀로 앉아 사방 들판 바라보니 뜬구름 다 걷히고 매 한 마리 높이 떴구나라는 시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선경이란 시상의 그림자 치고는 가장 소박한 내음을 맡을 수 있다.



화자의 후정은 가슴에서 묻어나오는 심회의 한 구절을 읊는다. 매 한 마리가 훨훨 날아올라 곧바로 천 층의 하늘에 오르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매가 빨리 날아 저 하늘 멀리 티끌을 날려서 그 날개에 묻히랴 라는 숨 가쁜 시상을 펼쳐 보였다. 매의 날개 짓에 따른 묻히는 먼지라는 시상이다.

※한자와 어구

獨坐: 홀로 앉다. 危樓: 누각 앉다. 望: 바라보다. 四郊: 사방의 들. 浮雲: 뜬 구름. 捲盡: 다 걷히다. 一鷹高: 한 마리 매가 높이 뜨다. // 翩翩: 훨훨 날다. 直上: 곧바로 높이 오르다. 千層碧: 천층의 하늘에 오르다. 那箇: 어느 한 마리(개). 飛塵: 티끌을 날리다. 點羽毛: 날개에 묻히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