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주도 ‘근대골목 투어’로 관광도시화 성공 도심속 숨겨진 역사유산 활용 문화로 도시를 재생하다 2. 대구의 근대문화유산 활용 민·관·학이 14년간 지속적 기획·지원 ‘지역 성장’ 견인 낙후로 40여년 방치된 중구 거리 전국명소로 자리매김 근대건축물·역사, 지도로 재탄생…도시재생 사업 추진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5년 08월 18일(화) 19:13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대구 중구 근대골목.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전국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단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젠 한국 도심재생사업과 문화가치 확산의 표본이 됐다. 제목만 보면 별 것 아닐 것 같은 투어 프로그램이지만,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지역성장의 대표 모범사례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일까. 민간에서 시작된 순수문화운동이 관의 지원으로 이어져 확대돼 15년 간 유지돼왔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바뀌는 지자체장에 따라 지역문화사업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 그 흔적만 난무하는 타 지역 사례를 보면, 이는 가장 차별화된 원천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곳저곳 전국 어디에서나 골목투어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지만, 대구의 그것은 태동과 과정 자체가 다르다.

‘대구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청라언덕에서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3·1운동길.

◇ ‘지도 그리기’에서 ‘골목 투어’로
도시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 대구 근대골목의 시작은 근사한 정책사업이 아니라, 한 대학 졸업생들의 ‘지도 그리기’로 시작됐다. 거슬러 올라가 14년 전 일이다.

지난 2001년, 대학생이던 권상구씨는 한 선배가 던진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구 중구 약전골목 어귀의 한약방 앞에서 그 선배는 “여기가 3대째 약을 파는 곳이야”라는 말을 던졌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권씨는 그 한약방을 수도 없이 지나쳤지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 한약방이 다시 보였고, 그 속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권씨는 그때 깨달았다.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은 ‘그 땅 생태계의 이야기’란 것을 말이다.

그는 바로 대학을 졸업한 뒤 동료들과 함께 약전골목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쌓고 지도를 그리는 문화운동에 돌입했다. 처음엔 친구들과 함께 100일 가량 골목을 돌고 지도 한 장을 그려봤다. 이후엔 그 지도에 이야기를 더 담아냈다. 그렇듯 곳곳에 숨어있던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들춰지면서 그곳만의 생태계 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이자 나침반이 완성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섰고, 지도는 단순한 좌표 이상으로 형상화됐다. 이 청년들은 이후 그 지도를 들고 골목길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름 하여 ‘대구 근대골목길 투어’가 2001년 시작된 것이다.

지금이야 흔한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골목길 투어는 이름조차 생소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이 날것의 프로그램에 지역사회는 환호했다. 이미 알고 있고, 이미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섬세하게 해석하고 알려주는 당시의 골목길 투어는 그저 걷고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땅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통로였던 것이다.

당시 골목길 투어를 이끌었던 권씨는 이제 ㈔시간과 공간연구소 이사를 맡아 ‘대구의 재발견’ 프로젝트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15년째 스토리텔링과 지도만들기를 통해 근대문화유산을 알리며 도시재생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대구시 중구는 근대역사와 문화지원을 바탕으로 한 ‘도심탐방 골목투어’의 성공을 계기로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대구시 중구 김광석 거리.

◇ 골목길 걸으며 성장한 지역사회

몇몇 청년들이 작게 시작한 이 문화운동은 지역사회의 호응으로 지속 유지되고 확대됐다. 대부분 대구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시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 근대골목길 투어에 참여한 이들은 그런 활동을 새롭게 여기고 공감했다. 현재의 코스가 완성될 수 있도록 생생한 증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지도와 투어 안에 담아낼 이야기보따리를 점점 풍성해졌다.

특히 시민들은 대구 근대골목이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탄생하는 과정을 목격했고 이를 지지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대구시민의 1%가 투어에 참여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2007년 대구근대골목 디자인 개선 사업의 주민총회로 이어졌다. 나아가 지자체를 변화시켜 ‘도심재생문화재단’을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대구 시민들은 지난 10여년의 과정을 통해 도시적 집단지성을 만들어내며 성장했다. 그리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북성로의 재발견’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근대건축물을 구매해 수리해 거주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 시민들에게 역사와 문화란 역동적인 삶과도 같은 맥락에서 사유되고 있는 셈이다.

그 성과로 근대골목투어는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됐으며, 2012년 ‘한국관광의 별’, 2013년 지역문화브랜드 대상과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2013 아시아 도시 경관상’ 등을 수상하는 등 대외적으로 성공적인 도시재생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또 대구 중구근대골목은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2015 열린 관광지’ 6곳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계산성당 옆 이상화 고택은 항일 문학가 이상화 시인이 작고한 1943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2007년 도심 재개발로 허물어질 뻔했지만 시민들의 보존운동으로 철거를 면했다.

◇ 관광 불모지였던 공간의 재탄생

그래서인지 2000년대 이전엔 관광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시 중구는 어느새 관광의 도시가 됐다. 근대역사와 문화지원을 바탕으로 한 ‘도심탐방 골목투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유산 활용정책을 펴나가며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것.

실제로 대구의 원도심은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외곽중심의 신도시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급격히 쇠퇴했다. 특히 중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수많은 근대역사자원이 보존되고 있었지만 도심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40년 넘게 방치돼 왔다.

이에 2009년 대구시 중구에서는 도시계획전문가, 지역주민, 중구청 등이 모여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추진협의회’를 구성, 다양한 도시재생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추진협의회는 수많은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대구읍성의 중심가였던 대구 종로 일대를 도시재생 창출공간으로 결정했다. 이후 종로와 일대지역이 정체성 회복과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역사성과 공공·예술성을 겸비한 중심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대구 중구는 역사종로, 진골목 등 장소·거리·건축물을 관광테마화해 근대역사문화 벨트를 조성하고, 쇠퇴한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한 선도적인 사업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후 대구시 중구청과 주민들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심재생문화재단을 설립해 근대문화체험관을 조성했으며, 대구 도시 전체의 근대역사문화벨트 구축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초석을 만들고 있다.

중구 동산동에 있는 청라동산, 청라동산 인근에 있는 3·1만세운동길, 민족시인인 이상화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으로 국권회복을 꿈꿨던 서상돈 고택 등은 역사의 흔적과 문화적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또 중구의 약전골목은 다양한 한방체험을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재탄생했고, 대구 중구 골목투어 4코스에 자리잡은 김광석 거리와 방천시장도 대구의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지도는 역사·삶의 이야기 담아낸 이정표 돼야”
권상구 ㈔시간과 공간연구소 이사

“제가 14년 전 만들기 시작했던 ‘지도’는 단순한 나침반이 아닙니다. 삶을 담아내고 역사를 쌓아내는 이정표를 구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전국 곳곳에서 그 지도의 형식만을 벤치마킹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내용을 착실히 챙기지 않으면 그 지도는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권상구(41·사진) ㈔시간과 공간연구소 이사는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국내 골목투어나 지도그리기 사업에 대한 우려를 가장 먼저 드러냈다.

권 이사는 “수백년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와 삶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지도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작업과정을 생략한 채 세련된 지도만 만들어내는 지자체들이 많은 것 같다”며 “그것은 성공할 수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그가 14년 전 대구의 지도만들기에 나선 것은 정작 그곳에 살면서도 모르고 있던 것들을 알려주고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내 땅을 제대로 산책해보자’는 권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해서 이 지도만들기를 통해 도시를 재생시키거나 관광화 시키겠다는 욕심은 아예 없었다.

권 이사는 “지도만들기를 지역민들과 함께 제대로 만들어내고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관광화의 성공이란 결실이 만들어진 것이지, 애초 도시를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없었다”며 “그런데 최근 벤치마킹하는 곳들은 이미 도시관광화라는 결과만을 바라보며 일을 진행하고 있어 오히려 더 실패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지도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틀인 것이다. 지도를 통해 장소를 재발견하고 그 장소에 뿌리 내린 이들과 나누는 정신인 셈이다. 그것은 보존과 활용, 그리고 나아가 활성화와 부가가치 창출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맥락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대구에는 200만명의 일본시민이 있었고, 대구 중구에만 1천800여개의 근대건물이 남아있어요. 전체 건물의 10%가 근대문화유산인 셈이죠. 이를 모두 체계화하고 스토리화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땅의 시간과 공간의 켜를 잘 보존·계승해 후세대에게까지 알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 반문이 그에겐 관광화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명분이다.

이 연재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