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낮잠이 들었으나 깨우는 사람은 없고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146)

2015년 09월 08일(화) 19:12

嚴川寺午睡 (엄천사오수)
점필재 김종직
보리가 익은 들에 교조에 방해되랴
여가에 야승 절에 잠간만 쉬리이다
어느새 낮잠 들으니 떡을 굽는 노파는.


맥숙하방성교조 투한잠게야승료
然午睡無人覺 只有林間婆餠焦
소연오수무인각 지유림간파병초

식곤증이 없는 사람도 점심을 먹고 나면 졸음이 온다. 꾸벅꾸벅 졸리는 생리적인 현상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 시인도 하루의 생활에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만 겹치는 졸음을 참지 못해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그 잠을 흔히 꿀잠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꿈의 깨어남’과 현실의 ‘깨달음(覺)’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낮잠이 들었으나 깨우는 사람은 없고, 다만 숲 속에서 노파가 떡을 굽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어느새 낮잠이 들었으나 깨우는 사람은 없고(嚴川寺午睡)’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이다. 조부는 김은유이고, 아버지는 김숙자, 어머니는 밀양 박씨로 박홍신의 딸이다. 1453년(단종1)에 진사가 되었고, 1459년(세조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했다 한다. 이듬해에는 사가독서를 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보리가 익은들 교조 살피는 데 어찌 방해가 되랴 / 여가를 훔친 후에 야승의 절에서 잠깐 쉬었네 // 어느새 낮잠이 들었으나 흔들어 깨우는 사람은 없고 / 다만 숲 속에서 노파가 떡을 굽는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엄천사에서 낮잠 자다]로 번역된다. 엄천사는 계율을 엄히 지키고 시냇물이 들을 풍요롭게 하듯이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절이란 뜻이다. 신라후기에 화엄사 결언선사를 궁에 초빙하여 왕명으로 지어진 절이라고 알려진다. 구한말에 지리산 북쪽의 최대사찰이었지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는데 한마디 기록도 남기지 않고 신기루 인 듯 사라진 절이다.



시인이 함안군수로 재직하면서 차(茶)와 관련된 일이 있어서 엄천사에서 하룻저녁을 묶었던 모양이다. 엄천사의 하룻저녁은 보리가 익어 있은 들 불교의 교조를 살피는 데 방해될 것인가를 묻고, 잠시 여가를 훔친 후에 야승의 절에서 잠깐 쉬었다는 심회를 노정(露呈)하고 있다. 시골에 사는 스님에서 잠깐 쉬었다 가기 위해 절을 찾을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찾아가려는 절을 깜박 잊고 그만 잠이 들었다. 화자는 어느새 낮잠이 들었으나 곁에서 흔들어 깨우는 사람은 없고, 다만 집 옆 숲 속에서 한 노파가 떡을 굽고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만을 발견하게 된다. 먼 길을 찾아오느라고 많이 분주할텐데 마치 시골 어머니와 같이 느껴지는 시상으로 보인다.

※한자와 어구

麥熟: 보리가 익어가다. 何妨: 어찌 방해 되랴. 省敎條: 교조를 살피다. 偸閑: 여가를 훔치다. 바쁜 틈을 타서. 野僧: 시골의 스님. 寮: 비슬아치. 집. 午睡: 낮잠. 無人覺: 깨우는 사람이 없다. 只有: 다만 ~이 있다. 林間: 숲 속. 婆餠: 떡국. 焦: 굽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