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강아지에도 봄은 깃들어 있으려니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147)

2015년 09월 14일(월) 19:36

咸關嶺 (함관령)
삼우당 허종
외로운 마을은 안개 속에 어둡고
날라가는 갈매기 밝게도 보이는데
봄날에 길손의 시름 더 맑게도 함인가.

煙覆孤村暗 鷗飛數點明
연복고촌암 구비수점명
柳饒春色早 天爲客愁晴
류요춘색조 천위객추청

터벅터벅 고개를 넘다 보면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멀리 날아가는 갈매기가 갈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만나게 된다. 치렁 처렁 곁가지를 드리운 버드나무가 어서 발길을 재촉하라는 듯이 힘을 북돋아 주는 경우가 있으리. 시인은 이를 하늘의 길손의 시름을 달래어 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버드나무 강아지에 봄이 깃들었으려니 하늘이 길손의 시름을 더 맑게 함이련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버드나무 강아지에도 봄은 깃들어 있으려니(咸關嶺)’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상우당(尙友堂) 허종(許琮:1434-1494)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문무에 모두 뛰어났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1462년 정언, 1463년 지평에 제수됐다. 이어 함길도도사·사간원정언·함길도경차관·훈련원판관 등을 역임했고, 1466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양천군에 봉해졌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외로운 마을은 안개에 덮여서 점차 어둡기만 하고 / 날아가는 갈매기만이 더욱 밝게 보이는구나 // 버드나무 강아지에 봄이 깃들어 있으려니 / 하늘이 외로운 길손의 시름을 더 맑게 함이련가]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함관령 고갯길에서]로 번역된다. 함관령은 함남 함주군과 홍원군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고개다. 고개 정상부근은 곡이 깊고 경사가 급하며 많은 굴곡이 있으나 너비가 넓은 도로로 예로부터 흥원과 함흥, 원산을 잇는 관북 중부해안지방의 중요한 종단교통로였다. 고개 마루엔 고려 공민왕 때 이성계가 원나라 군대를 물리친 전공을 기념하는 승전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이런 여러 가지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함관령을 넘는 심회는 보다 깊었을 것이다. 그래서 ‘외로운 마을은 짙은 안개가 덮여서 어둡기만 하고, 날아가는 갈매기만이 밝게 보이는구나’라는 시상을 일으켰다. 함관령 고갯마루에서 두루 통하는 길과 여러 방향을 살펴본 선경의 시상을 잘 표현했음을 볼 수 있다.



선경에 이은 화자의 생각은 지대가 높고 봄도 늦게 찾아온다는 함관령의 정서를 곱게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축 늘어진 버드나무 강아지에 봄이 깃들어있다는 사실은 오직 고갯길을 찾는 나그네에게 하늘이 길손의 시름을 맑게 함이련가라는 새로운 의문점의 시상을 일궈 냈다. 함관령의 깊은 소회가 무르녹아 있어 보인다.

※한자와 어구

煙覆: 안개가 덮이다. 孤村: 외로운 마을. 외딴 마을. 暗: 어둡다. 鷗飛: 날아가는 갈매기. 數點: 두어 점. ‘點’은 갈매기를 지시함. 明: 밝다. // 柳饒: 버들가지가 풍요하다. 물이 들었다. 春色: 봄의 기운. 早: 이르다. 天爲: 하늘이 ~을 하게 하다. 客愁: 객의 수심. 晴: 맑게 하다(수동형).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