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밥상에 오를 정치메뉴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09월 23일(수) 20:09

사흘후면 추석이다. 누군들 가슴 설레며 기다리지 않겠는가,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면 1년 농사는 다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햇과일과 더불어 차례상에 오르면 조상님도 기쁘고 후손들도 즐겁기 마련이다. 예전부터 추석은 송편 빚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추석 특유의 정경이다. 이 자리는 객지에서 온 가족으로부터 세상사와 정치이야기 같은 고급정보를 전달받는 통로였다. 자연 여론전달 창구였고, 여론조성의 장이었다.

그러니 영리한 정치꾼들이 숨어있는 송편빚기 모임을 놓칠리 없고 우리나라엔 새 전통으로 ‘명절민심잡기’라는 풍습이 생겨났다. 여·야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밥상머리 민심 잡기’ 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추석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여·야 모두 각종 정책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필자가 미리 살펴보니 새누리당은 ‘함께하는 개혁 다른 길은 없습니다’라는 추석 정책홍보물을 공개·배포하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존 이념성·당파성을 배제한 문구를 내세운 현수막과 홍보 소책자를 제작해 ‘한가위 선물은 우리 농산물’‘전통 명절 준비는 정겨운 동네시장’ 등으로, 투쟁적·공격적인 야당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두 당의 바램대로 될 것 같진 않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추석상을 앞에 놓고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어쩔 수 없이 ‘호남신당’일 것 같다. 천정배 의원에 이어 박주선의원까지 신당을 주창하고 나선 마당이라 지역의 추석 밥상엔 신당 문제가 주 메뉴가 될 것 뻔하다.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자신이 처한 여건에 따라 이 메뉴에 대한 의견은 분명 두 세 갈래로 갈릴 것이다. ‘분당해서 잘 된 사람 하나 없고, 통합과 단결만이 살 길이다’는 송편파와 ‘신당 창당만이 호남정치를 살리는 길이다’는 과일파가 충돌할 것이고, 이것도 저것도 싫다는 무당파가 싸움을 말릴 것이다.

현재 상황으론 추석 민심이 어떻게 갈리든 호남신당 출현은 기정사실인 듯하다. 그럼 창당 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가장 큰 추석고민이 뭘까. 당을 이루는 것은 어차피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 정치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공언했듯이 신당의 참신한 얼굴이 될만한 이른바 ‘뉴DJ’가 필요한데, 호남에는 신당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전국 정당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비수도권의 참신한 인재 수혈이 숙제로 남는다. 10월 8일 국정감사가 끝난 후 현역 국회의원의 추가적인 연쇄 동조 탈당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지만 추석 연휴가 끝나면 여러 신당 추진 주체들 간에 연쇄 회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탁회의든 연석회의든 어떤 형태가 되든 간에 신당 창당을 선언한 여러 세력 간의 협의 테이블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추석 전에 연쇄 탈당과 신당 창당 선언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면, 추석 이후에는 여러 신당 간의 통합 협상을 통해 국민 여론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이 전략인 것 같다.

하여튼, 지역민들은 추석밥상에 호남신당을 올려놓은 후 한국정치에 대한 비판 소리를 높일 것이 분명하다. 지금, 민족의 명절 한가위 전야의 민심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지역민들은 현역의원들을 만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있겠냐며 따끔한 회초리를 들 것이다. 만약 어떤 정치인이 회초리 든 이에게 ‘그래도 내 탓보다는 네 탓이 크다’고 항변한다면 더 몰매를 맞을 것이다. 지역민은 호남당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 총선 전망, 여·야 공천권의 향배, 나아가서는 차기 대선주자 등에 이르기까지 더 흥미로운 정치적 상황을 놓고 갑론을박할 것이다. 올 추석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 화제가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러나 ‘추석 정치 토론’은 대개 같은 집안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반대 정당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논쟁이 과열되다 보면 자칫 얼굴을 붉히거나 말싸움 이상의 다툼으로 번진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남신당 얘기든 여야정치 얘기든 유명 정치인 위주로 계파싸움 권력다툼 부정부패만 관심 가질 것이 아니라 주요 정치인들의 행보와 발언에 담긴 가치, 선거제도 개편 방향을 둘러싼 여러 입장, 정치 혁신에 담긴 의미 등을 잘 살펴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만 누가 국민을 호도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지, 누가 정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정치를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관심을 두고 정치에 대한 채찍질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국민에게 주름살만 늘게 하는 정치는 없느니만 못하다. 추석 정치 민심은 그지없이 싸늘하다. 정치인이 민심의 회초리를 피할 방법은 없다. 여·야 국회의원은 매 맞을 각오를 아주 단단히 하고 추석 민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가는 곳마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택시 운전기사부터 재래시장 장사꾼은 물론이고 몇년만에 보는 친척들까지 하나같이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는데, 쌈박질만 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지역민들이 호남신당 얘기를 주 메뉴로 올리는 것도 신당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호남정치가 바로서기를 바라는 염원이라는 점 잘 알아야 한다. 간절하고 절박한 추석민심은 ‘제발 정치가 국민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지 말고 희망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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