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해요, 오늘부터, 서로 배려를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10월 07일(수) 20:31

광주지방검찰청이 일을 냈다. 김해수 검사장, 김희준 차장검사가 만들어낸 ‘SOS 1000만 명 릴레이 캠페인’은 문화수도 광주에서 쏘아올린 또 다른 작은 공, 창의적인 정책 이벤트라는 생각이 든다. 교통문화지수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광주 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검찰이 나서 대대적인 실천운동을 제안한 것 자체가 신선하거니와 ‘배려’를 캠페인 주제어로 선택한 것 역시 탁월하다.

잘 알다시피 광주는 문화수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교통사고율 1위의 오명을 쓰고 있다. 결국 검찰까지 나서서 광주에서 이런 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은 광주의 교통문화가 그만큼 수치스럽다는 말이다. 수년간 계속되어 온 광주의 불명예를 벗겨내기 위해 ‘SOS’(시작해요, 오늘부터, 서로 배려를)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를 들어보니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선포식에서 ‘배려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의 법’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광주검찰청이 얘기하는 ‘마음의 법, 배려’라는 말이 와 닿은 적도 없다.

사전에서 배려는 ‘도와 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배려다.

1960년 10월, ‘대지’의 작가 펄벅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갈 때 갑자기 차를 세웠다고 한다. 차 옆으로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지게 위에 볏단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펄벅은 자신을 태운 차가 소를 놀래킬까 배려하는 마음으로 차를 세우고 나와서 농부의 ‘배려’에 경외심을 보냈다. 미국 같았으면 하루 일을 끝낸 소가 힘들어 하건 말건 지게와 볏단, 사람까지 소가 끄는 달구지에 올라타 편하게 갔을 터인데, 한국 농부는 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볏단을 지게에 지고 소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었으니, 그것을 바라본 이방인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겠는가. 짐승의 짐까지 덜어주려는 마음의 배려를 바라보는 펄벅의 눈에 한국 사람은 더없이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비춰졌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펄벅은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석같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펄벅이 다녀간후 5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펄벅을 감동시켰던 길 위의 배려와 양보는 없다. 자동차가 종횡무진 질주하는 도로 위에서의 ‘배려 없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로위에서 타살되고 있다. 끼어들기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과속은 물론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어 어린이 노인 임산부 장애인이 도저히 안심하고 다닐 수가 없다. 최근 3년 사이 노인 운전자의교통사고는 30% 가까이 늘어 한해에 사상자수가 1만6천여명이나 된다. 해마다 20만건이 넘는 교통사고로 인해 연간 10조원이 넘는 사회적 피해비용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교통문화 의식은 C등급 수준이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정지선 준수율, 안전띠 착용률, 신호 준수율, 어린이나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위한 배려 여전히 낮다.

교통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사람은 자기가 사는대로 운전한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 침착하게 사는 사람은 운전도 침착하게 하고 평소에 거칠게 사는 사람은 운전도 거칠고 과격하게 한다는 말이다. 평소에 겸손하고 양보하며 사는 사람은 운전도 겸손하고 양보하는 운전을 하고, 평소에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운전도 이기적이고 공격적으로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평소 인격이 운전할 때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갑자기 평소 인격을 감추고 품위에 배려의 교통문화를 준수하라고 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광주의 경우 문화수도를 천명할 때와 문화수도를 천명하지 않았을 때의 시민 교통문화 수준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외지인이 와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이 그 도시의 교통문화이며 교통문화에 실망할 경우 문화도시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적 문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보복운전과 난폭운전은 거의 범죄 수준이라는 점에서 ‘배려’를 넘어 준법정신을 따지게 된다. 자동차의 본고장인 독일의 경우, 속도제한이 없어도 교통사고율이 우리와 비교가 안 될 만큼 현저히 낮다. 그 이유는 운전자가 백미러를 살피는 주의의무와 법 준수의식이 투철하기 때문이다. 도로에서의 다툼과 보복 운전을 예방하려면 진로 변경 때 방향지시등 켜기, 일몰 전 전조등 켜기, 고속으로 주행하더라도 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차에 진로 양보해 주기, 좁아지는 길에서 방향지시등 켜고 끼어들려는 차에 양보해 주기 등 운전하면서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던 바, 원하던 바를 내가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해주겠다는 마음, 즉 역지사지의 태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훨씬 더 안전하고 행복한 운전을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심리학자가 인간의 행복의 조건을 조사했더니, ‘내가 안전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할 때다’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약자에 대한 조그만 배려를 할 수 있다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한 일화다. 간디가 여행을 가기 위해 급하게 열차를 타다가 한쪽 신발이 벗겨져 플랫폼에 떨어졌는데 그것을 집어 올릴 틈도 없이 바로 열차가 출발해 버렸다. 그러자 간디는 남은 신발 한 짝을 벗어 플랫폼으로 던져버렸다. 옆 사람이 이유를 물었더니, “신발을 습득한 사람이 한쪽만 있으면 쓰레기통에 버리겠지만 양쪽 신발을 줍게 된다면 온전하게 신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간디와 같은 배려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위험한 도로위에서의 일상생활 속 작은 배려가 사회를 변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착한 운전 하면서~.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