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의 판단만으로 나의 생애를 묻지 말게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150) |
| 2015년 10월 12일(월) 1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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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옹 김굉필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달 부르니 외롭고 쓸쓸한 나를 비춰
안개의 물결 위에서 산들만이 가득하네.
處獨居閒絶往還 只呼明月照孤寒
처독거한절왕환 지호명월조고한
憑君莫問生涯事 萬頃煙波數疊山
빙군막문생애사 만경연파수첩산
자서전(自敍傳)이라고 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살아 온 행적을 필설로는 다 쓸 수는 없으리.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 멀리서 가까이서 응시하면서 질곡의 삶을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더러 만나게 된다. 붓을 들었다 해서 나의 생애를 다 쓸 수도 없어 보인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은 자기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에 그렇게들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대의 판단으로 나의 생애를 더는 묻지 말게 넓은 바다 안개 낀 물결 첩첩한 산 가득하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그대의 작은 판단만으로 나의 생애를 묻지 말게(書懷)’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사옹(筑? 김굉필(金宏弼:1454-1504)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이다. 다른 호는 한훤당(寒暄堂)로 알려진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에 심취해 스스로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칭했다 한다. 1480년(성종11) 초시에 합격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홀로 있으며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 오직 달을 부르니 가난하고 외로운 나를 비춘다네 // 그대의 판단으로 나의 생애를 더는 묻지 말게 / 넓은 바다 안개 낀 물결 첩첩한 산이 가득하니]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회포를 적다]로 번역된다. 흔히 ‘인생역경 천리 길’이란 말을 한다. 어쩌면 사람이 질곡의 역경을 딛고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도 모르겠다. 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물결과 같아 한 때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순탄한 때가 온다는 말도 더러 한다. 험로가 있는가 하면 평탄한 길도 있다는 점에서 시적인 배경이다.
시인은 이미 조광조 스승에 대한 학통이 그러하듯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홀로 있으며 한가한 곳에 살고 있으니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회고하면서 오직 달을 부르니 가난하고 외로운 자신을 비춘다고 했다. 깊은 학문과 운명과도 같은 험로가 예견된다. 그리고 심오한 학문을 떠나, 찬란히 꽃피운 질곡의 아픔이 예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화자는 부정칭의 그대들을 말없이 소리쳐 부른다. 그대들의 섣부른 판단으로 나의 생애를 묻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넓은 바다와 안개 낀 물결, 그리고 첩첩한 산이 가득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겠다. 무오사화 때 유배됐다가 갑자사화 때 사사되는 순환 속에서 그의 운명을 예감하는 시상을 만나게 된다.
한자와 어구
處獨: 홀로 있다. 居閒: 한가하게 살다. 絶: 끊어지다. 곧 드물다. 往還: 오고 가다. 只呼: 다만 부르다. 明月: 밝은 달. 照: 비추다. 孤寒: 가난하고 외롭다. // 憑君: 그대에게 의지하다. 호칭하는 소리. 莫問: 묻자 말라. 生涯事: (나의) 생애의 일. 萬頃煙波: 넓은 바다와 안개. 數疊山: 첩첩산중.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