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유지 주요 수단…생산지가 교역 중심지로

전남 천일염 세계 명품으로 <12>소금으로 부자된 세계의 도시들
로마, 소금무역으로 국력 키워 통일·번영 구가
암스테르담도 청어 내장 염장기술 개발 부 축적
대만 치꾸옌산 염산 활용 관광상품화 수입 짭짤

박연오 기자 yopark@kjdaily.com
2015년 10월 19일(월) 20:30
우리나라의 천일제염법은 일본 식민 기관이 대만의 제염법을 옮겨 온 것으로 1920년대 중반까지 대만에서 만들어진 소금이 많이 팔리다 해방 이후 소금 값이 폭등하자 정부가 염전 개발에 주력해 지금의 서해안 지역 염전이 만들어졌다.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영광 영백염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소금은 전통적으로 절대자의 권위와 힘의 상징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금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이집트, 페르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는 행정적으로 소금의 생산 및 공급을 통제했으며, 생활필수품인 소금을 화폐로 사용했다.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봉급을 소금으로 지급할 정도였다. 사역을 하고 받는 댓가를 영어로 salary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병사에게 주는 소금돈’이라는 라틴어 salarum에서 유래된 것이다. 소금의 생산지인 해안이나 암염, 염호 등이 있던 장소는 수렵민이나 농경민이 소금을 교환하기 위해 모여들면서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점차 소금을 얻기 위한 국가간의 교역로가 발달하며 부를 축적하게 됐다.

◇로마의 모든 길은 소금으로 통한다=서구문명사회의 중심으로 로마가 발전하게 된 핵심에는 바로 소금이 존재했다. 로마 근교 티베르 강 하구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당시 불에 구워 만들어졌으며 매우 값이 비쌌다.

반면 운하를 통해 로마로 운반된 천일염은 품질이 좋고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로마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된 유명한 소금 길은 기원전 4세기부터 대륙 곳곳으로 연결됐고, 동양은 200-300년 후 전한 무제 시대부터 개척된 실크로드와 대비된다.

국가 전매사업인 소금 수출이 늘어나면서 로마는 급속히 부강해 졌으며, 인구 200만명에 이르는 당시로써 가장 큰 도시를 이루게 됐다.

당시 로마는 관리나 군인에게 주는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했다. 라틴어로 소금(salarium)은 추후 급료(salary), 샐러리맨의 어원이 됐다. soldier, salad 등도 모두 ‘sal(소금)’의 접두사와 관련이 있다.

소금 무역으로 부강해진 로마는 대제국으로 통일되고 번영을 구가했으나 1세기경 지중해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바닷가 염전을 상실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흑해에서 소금을 수입하게 되면서 중요한 부의 원천을 상실한 로마는 경제력이 점차 쇠락했다.

유명한 관광지로 자리잡은 치꾸옌산은 남부대만의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소금으로 뒤덮인 염산으로 마치 설경을 보는 듯하다.
◇소금으로 로마의 부를 이은 베네치아=작은 어촌에 불과한 베네치아가 로마제국의 풍족 항구도시로 변모한 것은 바로 소금 때문이었다. 지역적인 특수 환경으로 오늘날 천일염 기술을 개발한 베네치아는 양질의 소금을 생산, 당시 로마제국 등 유럽에 소금을 수출해 큰 이익을 얻었다.

소금으로 부를 축적한 베네치아는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들여온 실크, 도자기 등을 거래해 큰 부를 얻어 유럽 최고의 무역거래 도시가 됐다.

일찍이 소금의 중요성을 발견한 베네치아는 소금무역의 경쟁상대 도시, 국가와 전쟁도 불사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세기 베네치아로 가 전쟁 기술 개발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결국 소금을 중심으로 한 무역은 차츰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독일, 스웨덴의 북해 도시들도 발전하고 프랑스 왕실도 소금 전매수입을 절대 왕권의 기반으로 했으며, 오스트리아 소금의 유통 중심지였던 잘츠부르크(Salzburg)는 이름 자체가 ‘소금성’이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소금으로 생선을 염장해 부 축적=스페인, 포르투갈 반도에서 쫓겨난 유태인들이 암스테르담 등으로 이주해 북해에서 잡힌 청어의 내장을 제거해 소금으로 염장(鹽藏)하는 기술을 개발, 당시 유럽인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암스테르담은 소금 중계무역기지로 발전하게 되면서 부를 축적하게 된다. 이후 영국과 더불어 동인도 회사를 만들어 마카오, 중국, 일본까지 진출하는 등 활발한 해양무역을 벌였다. 한편, 네덜란드는 좁은 면적, 열악한 자연환경에서도 소금, 수산물, 꽃 재배 그리고 금융업 발전으로 선진국으로 등장했다.

당시 영국은 인도, 홍콩을 비롯한 세계 최대의 식민지를 확보하고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을 주도해 세계 일등국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 인도에서 소금 전매제도와 관련해 마하트마 간디의 무저항 운동에 직면하여 경제력이 기울기 시작했고, 세계 2차대전을 치르며 미국에 그 주도권을 양보하게 됐다.

◇프랑스 게랑드 소금 세계 최고가=천일염이 주목받기 전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특별한 전통 방식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세계적인 명품 소금들이 인기를 모았다.

프랑스의 게랑드, 포르투갈의 알가르브 지역은 다단계 증발식 천일염전에서 유기농 소금을 생산한다.

게랑드 염전은 200년 전 생산 기법을 복원해 장인 정신을 담은 명품 천일염을 연간 1만5천t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소금의 꽃’으로 불리는 게랑드 소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소금으로 ㎏당 8만원을 호가한다. 특이한 성분과 구조로 인기를 얻고 있는 소금도 있다. 최고의 미네랄 함량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일본 오키나와 ‘설염’과 연한 분홍색을 띠는 히말라야 ‘핑크 소금’, 일반적인 소금의 결정 구조가 정육면체인 데 반해 피라미드 형태인 이탈리아의 ‘피오치’가 꼽힌다.

150년전 대만의 수도이자 대만에서 4번째로 큰 도시 타이난(台南)에는 곳곳에 제염소가 많았으나, 작업이 힘든 탓에 제염소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중 ‘치꾸옌산(七般鹽山)’은 현재 대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염소이며 줄어드는 제염소를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에는 소금과 관련된 관광상품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치꾸옌산은 남부대만의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소금으로 뒤덮인 염산으로 마치 설경을 보는 듯하다.

소금산은 아파트 4층 높이 가량으로 굵은 소금을 쌓아 산처럼 만들어졌으며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돼 있다.

염전 지대에는 과거의 역사를 재현한 소금으로 쌓은 염산과 소금 박물관 그리고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는 소규모 염전과 오락 시설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 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소금으로 쌓은 염산(鹽山)이다.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기차에 싣기 위해 쌓아놓았던 것을 재현한 것인데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박연오 기자 yopark@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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