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유적 최대 활용으로 최상의 보존 이끌어 ‘일석이조’ 도심속 숨겨진 역사유산 활용 문화로 도시를 재생하다 진은주 |
| 2015년 10월 20일(화) 1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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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하면 흔히들 로마나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 등을 떠올리지만 그들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도시가 바로 ‘베로나(verona)’다. 다른 도시들의 유명세에 밀려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베로나는 수천년 역사를 품은 ‘아레나(Arena) 경기장’과 셰익스피어 고전의 배경이 된 ‘줄리엣의 집’을 찾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특히 ‘아레나’와 ‘줄리엣의 집’은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을 단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활용해 상품화하고 있어 관련 도시나 업계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에 대해 ‘보존이냐 활용이냐’를 놓고 극단적 논쟁만을 벌이고 있다면, 지혜로운 절충안을 베로나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베로나는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보존’이며 ‘기억을 유지시키는 것이 보존과 활용의 주제’라는 화두로 도시재생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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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아레나는 2천년 전 지어진 원형 경기장으로, 실제 검투장으로 활용됐던 곳이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이다. 로마 콜로세움보다 40년 먼저 지어졌지만 보존상태는 훨씬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당시 검투사나 맹수가 흘린 피로 바닥이 붉게 물들고 냄새가 나면 로마인들은 새로운 모래를 깔았다. 해서 라틴어로 ‘모래’라는 뜻인 ‘아레나’가 문패에 새겨진 것이다.
이처럼 핏빛의 명함을 지닌 아레나가 현대에 들어서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역사적 보존과 예술적 재활용을 병행해 도심재생까지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로나는 아레나에서 세계대전으로 2차례 중단된 것을 제외하곤 매년 6월부터 9월 초까지 ‘야외 오페라 축제(Arena di Verona Opera Festival)’를 열고 있다. 세계 최대 야외 오페라 축제로, 102년 역사를 자랑한다.
앞서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1913년 8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클래식공연이 모태가 됐다. 이후 1930년 아레나는 오페라 극장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지금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작품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오페라들이 공연되고 있다. 한번에 1만6천명이 관람 가능한 초대형 오픈 공연 무대가 매년 여름이면 열리는 것이다.
지난 6-9월 열린 올해 축제에서는 오페라 ‘아이다’의 주인공을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소프라노 임세경씨가 맡아 국내에서도 화제를 낳은 바 있다. 고풍스러운 도시 속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경기장 야외무대에서 한여름 밤 펼쳐지는 화려한 오페라 공연은 그 누구에게도 잊지 못할 선물일 터. 여름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원형경기장에 들어찬 관객들이 하나둘씩 촛불을 밝히면서 공연이 오르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해서 오페라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인기 높은 브랜드축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아레나는 과거 핏물을 튀겼던 경기장이 2천년 뒤 세계 최고의 야외 공연무대로 자리매김한 성공사례이다. 경기장이라는 역사적 건축물이지만, 활용을 전제로 한 보존을 통해 복합적인 뮤지엄의 성격을 띠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곳에선 이제 역사·유물·예술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아레나의 최근 3년간 방문객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아레나 원형극장을 관리하고 있는 디 아레나 재단(Fondazione di Arena)에 따르면 오페라축제에는 해마다 평균 50만명이 다녀간다. 또 오페라 축제 참여 인원을 제외한 아레나 방문객 수는 2012년 68만5천명, 2013년 79만7천800명, 2014년 85만명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른 관광 수입은 해마다 평균 4억5천만유로(한화 약 6천46억원)에 이른다.
◇활용해 번 수익금, 보존에 투입 ‘선순환’
그렇다면 아레나의 운영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아레나는 정부에 소속돼 있으며, 재단에 의해 관리·운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레나는 정부 소속이지만, 재단은 독립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역사유적 보존업무 담당자들을 비롯해 고고학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각계 전문가 15명가량의 직원이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외에 프로젝트 시행 때마다 파도바 대학, 베네치아 대학 등 학계와 유연하게 협력하기도 한다.
운영 경비는 국가 지원이나 재단 지출, 스폰서 등으로 충당된다. 오페라 축제를 통해 생기는 수입과 입장료는 정부와 재단이 나눠 가져가고, 재단은 이 수익금을 주로 아레나 보존에 쓰고 있다. 요컨대, 활용해 번 돈을 다시 보존에 쓰고 있는 선순환 구조인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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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다음으로 베로나의 명물로 꼽히는 곳이 ‘줄리엣의 집’이다. 에르베 광장에서 서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가 카펠로 거리에 들어서면 바로 줄리엣의 집으로 이어진다.
셰익스피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은 1302년 교황을 지지했던 몬테지 집안과 황제를 지지했던 카폴레티 집안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어디까지나 희곡일 뿐 실존 인물은 아니다. 또 베로나 줄리엣의 집이 카폴레티가의 줄리엣이 살던 집이라는 증거도 없다. 15세기풍 이탈리아 귀족의 저택을 재현해놓은 것뿐이다. 하지만 소문과 스토리가 더해지니 이 곳은 베로나 여행객이 가장 먼저 들르는 명소가 됐다. ‘혹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내게도 멋진 로맨스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관광객의 애틋한 심리를 자극해 낭만여행의 지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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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레나 재단(Fondazione di Arena) 세로지오 메논·마르헤리타 볼라 인터뷰
“역사유적이나 문화유산을 바라볼 때, 그것을 어떻게 계속 기억하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숙제 같아요. 그 기억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레나 원형극장을 관리하고 있는 디 아레나 재단(Fondazione di Arena)의 보존기술자인 세로지오 메논과 고고학자인 마르헤리타 볼라는 입을 모아 이같이 주장했다.
세로지오 메논은 “아레나는 검투장이었던 곳이 연극·공연 등 복합문화공간이 된 세계 대표적 성공사례”라면서 “이처럼 2천년 역사를 가진 유적을 활용해서 보존한다는 방식도 흔치 않은 경우”라고 요약했다.
그는 이어 “아레나는 로마시대부터 존재해 원형경기장으로 활용됐고 이후 오랫동안 비어있는 상태였다”며 “오페라축제 공간으로 재조명받고 성공하면서 아레나의 정지된 생명력은 다시 꽃피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레나는 명실 공히 뮤지엄(AMO·Arena Museo Opera)이 됐다”며 “오페라축제뿐 아니라 올해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레나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려는 이들의 보존 노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해서 아레나와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려면 관계자들은 우선 300년 전부터 존재한 문서들을 통해 아레나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 사업을 시작할 때 고려하는 최우선 가치가 바로 보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보존은 단순 박제나 보호가 아니다. 사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 보존의 의미 역시 희석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레나의 보존정책에는 사람들의 기억을 유지시켜주고 역사의 정신을 불러일으켜 현재 삶의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케 하자는 전제가 깔려있다.
마르헤리타 볼라는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기억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남겨진 유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보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베로나=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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