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질만능주의와 슬픈 부성애 고리오 영감 |
| 2015년 10월 25일(일) 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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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자식은 자신의 분신이자, 또 다른 희망과 욕망의 대리인이다. 때론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그들의 인생을 깊게 관여하고 싶어한다. 부모의 입장과 자식들의 입장은 확연히 구분된다. 먼저 세상을 경험해 본 부모는 다가올 세상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이다. 반면 자식들은 나약하지만 새로운 세상과 맞서고 대립하려고 한다. 물론 부모의 품에서 머물고 싶거나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작용할 것이다.
부모들은 오직, 자식들의 행복만을 기원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하에 그들에 대한 걱정과 몸부림만 가득할 뿐이다.
오노레드 발자크(1799-1850)의 소설 ‘고리오 영감’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프랑스 사회로 절대왕정의 해체,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 출현, 금융의 등장으로 인해 물질만능주의가 급격히 팽창 된 시기였다. 소설의 전개는 주로 두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나의 축은 ‘고리오’ 영감이고, 또 하나의 축은 ‘으젠 드 라스티냐크’ 이다.
고리오 영감은 졸부로서 오직 딸들의 장래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헌신한 아버지이다. 그리고 가난한 라스티냐크의 세속적인 욕망과 출세를 위한 비열한 처세를 담고 있다.
고리오 영감은 젊은 시절 곡물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후 나름의 권력기반까지 갖춘다. 하지만 두 딸을 위해서 거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했고, 큰딸 ‘아나스타지’는 ‘레스토’ 백작에게 둘째딸 ‘델핀’은 은행가인 ‘뉘싱겐’에게 시집보내면서 재산의 반을 각각 지참금으로 소비했다. 설상가상 그녀들의 사치와 낭비벽으로 그의 모든 재산을 탕진해 마침내 허름한 하숙집에 살게 된 것이다.
라스니냐크는 출세를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먼 친척을 이용한 파리 사교계 진출을 열망한다. 특히 델핀에게 접근해 재정적 후원과 상류 사회의 진입을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허망함이 가득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와 한판 승부를 다짐한다.
고리오 영감의 뜨거운 부성애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일했어. 등에 등짐 지고 땀을 소나기처럼 흘렸어. 천사와 같은 너희들을 위해서 일생동안 나는 궁핍했고 벅찬 일과 무거운 짐조차도 가볍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고 딸들에게 고백한다.
고리오 영감은 운명 직전에 그토록 사랑하던 딸들을 그리워하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의 장례식은 딸들과 사위들의 무관심으로 너무나 초라하였다. 그의 묘지로 가는 마차는 한 대뿐이었다.
생전에 고리오 영감은 “돈이 바로 인생이야.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부르짖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딸들의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파산의 고통에 직면한다.
우리 주변에 고리오 영감이 가득하다. 오직 자식들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지만 결국에는 버림받는 노인들만 양산할 뿐이다. 부모의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더 이상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결국에는 천륜과 인간의 존엄성마저 타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