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은 바뀌어도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11월 04일(수) 19:25

갱년기에 차창 밖으로 보는 가을빛, 좀 스산하다. 11월 되니까 굳이 산에 가지 않아도 나무아래 뒹구는 낙엽 쉽게 보고 밟을 수 있어 좋다. 사복사복 밟히는 낙엽, 사뭇 쌀쌀한 바람 때문에, 올 한해와 인생을 돌아보며 좀 쓸쓸해지곤 한다. 저~나무는 가르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가을 되면 어김없이 단풍을 만들어 나뭇잎 떨어내고 수천년, 수만년, 수억년 동안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의 섭리다. 가을낙엽 보면서 인간은 여러 감흥을 일으키며 과거로의 여행을 진하게 하게 된다. 자기만 아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나와 만나 지나옴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남은 나날을 이야기하게 된다. 타고난 지성과 지혜도 시간이란 무게에 치이면 휴지처럼 나뒹굴고, 쌓아놓은 명예와 부귀도 가는 세월의 빈뜨락 앞에선 쭉정이가 된다는 사실,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남아있는 개인사를 잘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하물며, 이 나라의 지난 5000년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임에랴. 추풍낙엽 보면서 한 해를 반성하는 무지랭이 백성의 개인사(史)가족사(史)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기어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60%가 넘는 국민이 반대하는 일이었다. 중·고생 대학생 교사 역사학자 시민단체 종교계까지 들불처럼 일어나 ‘반대 반대’를 외쳤지만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며 강행했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록이다. 집단의 기억이고 집단의 평가가 누적된 결과다. 집단의 평가란 획일적일 수 없다. 다양한 평가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입장에 따라 시대별로 평가와 논쟁이 계속 될 수는 있지만, 그 논리를 국가나 단체가 수평적으로 대등하게 나열할 수도 없다. 역사란, 과거 자랑스런 업적이든 수치스런 업적이든 지금 현대인이 반성하면서 배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가치 기준은 ‘정의’다.

그런데, 현 정부가 한국사국정교과서의 표본으로 삼으려는 교학사 교과서는 발행 당시 대한민국 어떤 학교도 채택을 하지 않은, 교사와 학생으로부터 거부당한 교과서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지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됐다고 미화했고, 친일파의 친일행적을 의도적으로 왜곡 누락한 교과서다. 무려 2122건의 오류가 발견됐으며, 다른 교과서의 오타까지 복사해서 여기저기 붙여넣어 표절교과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새 국정교과서는 새 집필진을 구성해서 집필하겠다고 했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국정화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실패 교과서’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특히 올해 집필을 시작해 2017년부터 배포하겠다는 일정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분량이 적은 초등학교 교과서 편찬 기간도 1년6개월이다. 어떤 교과서든 완성되는데까진 통상 33단계가 필요하다. 중등 역사교과서는 보통3-4년이 걸리는데 이제 남은 기간 1년4개월 동안 33단계를 거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예고하고 있으며 졸속을 내포하고 있다. 설상가상 초능력을 발휘해 만든다해도 현재 학교 분위기로봐서는 더 많은 논란과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또 한번의 회오리 바람이 불 것이고 학교현장은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는동안 정부와 교사 사이에 낀 학생들의 고통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필자는 언론생활 30여년 동안, 호남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필자는 현 검정교과서도 호남역사 호남인물에 대한 기술은 너무 협소하고 의도적으로 작게 취급되어있다고 본다. 또 다른 편향인 것이다. 사실 현 역사교과서도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는 남아있는 자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기술하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누락한 경우 지역역사는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혀있다. 어쩌면 세월에 묻힌 인간의 역사, 어둠에 묻힌 과거 속에서 명명백백한 진실의 전모를 건져 올리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서 진실에 육박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 무수한 연구자들의 부단한 수집과 공부, 연구 수정작업 등 엄정하고 치밀한 노력을 통해 진실은 드러나야 하며, 역사교과서는 그 산물이어야 한다.

1910년대 이탈리아에 출현한 파시스트 집단은 언론매체를 장악해 국민들로 하여금 개인을 없애고 전체에 복종하도록 하는 선전교육에 총력을 쏟았다. 이들은 파시즘의 전체주의 주입을 위해 단일한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추진한 교육정책을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삼았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전쟁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집단의 모방이 아니길 바란다.

국민의 분노는 현재 임계점에 달하지 않았나 걱정이 든다. 어떤 정책이든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를 하면 왜 그런지 들어봐야 한다. 들은 척도 않고 싸움에만 열중해서는 희망이 없다. 견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지 않는 것은 정치도 통치도 아니다.

이 세상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역사책은 바뀌어도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