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베낄 수 없는 ‘오랜 세월의 힘’ 진은주 문화팀장

2015년 11월 08일(일) 19:02

우리는 이제 막 지어진 휘황찬란한 건물에 순간 매료되다가 금세 싫증을 낸다. 그 속엔 삶의 흔적이나 이야깃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조금은 낡았지만 그 오래된 흔적이 오히려 힘을 발휘하는 순간을 종종 본다. 문화의 원동력은 이렇듯 새것보다 헌것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최근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주제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일대를 취재하던 중,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에 머물렀다. 할슈타트는 성탄절 카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화 속 호수마을’로 유명한 휴양지다. 인구가 1천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산을 깎아 만든 집들로 이뤄진 할슈타트는 관광객들을 쉼 없이 불러들이고 있는 곳이다.

세계 최초 소금광산, 독특한 장묘문화, 절경과 오래된 역사 등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특히 지역민 스스로 도시를 관리·유지하는 시스템 안에는 할슈타트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팽배하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처럼 아름다운 할슈타트를 통째로 베껴 건설한 중국의 행태이다. 지난 2011년 중국 광둥성 훼이저우시의 부동산업체들은 1조1천억원을 들여 할슈타트를 모델로 한 알프스풍 마을을 시 외곽에 만들었다. 당시 중국의 할슈타트 복제는 세계적 관심을 산 바 있다. 이후 중국은 2013년 프랑스 파리를, 올 초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각각 본 뜬 가짜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짝퉁’ 할슈타트는 원래의 것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을까. 가짜 할슈타트를 본 여행객은 오히려 진짜를 보고 싶다며 오스트리아를 찾는다. 원래의 것을 더 보고 싶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외관은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과 함께 축적된 그 내면과 문화까지는 도저히 베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그곳은 영원히 ‘가짜’일 수밖에 없다.

최근 광주에서도 국제적으로 유명한 도시를 일부 옮겨놓는 프로젝트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볼거리일 뿐, 아무런 문화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짝퉁’임을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