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치 1번지’의 설움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11월 11일(수) 20:35

가을 길 걸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화두가 있다. ‘모든 것은 정치적인가?’ 분명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타인과 함께하는 모든 과정을 정치 맥락에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는 영역을 구획하고 여러 선택지를 만들며 삶의 양식을 정치가 많이 개입하고 결정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필자가 보고 있는 저 노란 은행잎을 정치가 결정했는가? 다른 정치체제하의 인간은 저것을 은행잎이 아니라 단풍잎으로 볼까? 보편적·생물학적 특성은 정치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요즘 역사교과서국정화 문제의 정치적 결단을 보면서, 과거 5000년 한반도 역사 대맥이 ‘정치의 잣대’에 휘둘려 재구획·디자인될 수 있는 영역인지 되묻게 된다. 또한 광주시 동구 주민들을 바라보면서도 5000년 동구 주민의 삶을 정치가 구획하고 재디자인할 수 있는 영역인지, 항변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내년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결정되면 광주 동구라는 지역구가 사라진다. 광주 동구가 국회의사당 안에서 사라지고 북구에 통·폐합되는 기준은 ‘선거구당 인구 고려, 영남과 형평성, 충청도와 비교’ 등이다. 광주지역 국회의원들도 인구, 행정구역, 문화생활권 등 기준을 고수하는 규정이나 유사 사례 등에 비춰 동구 선거구를 유지하자는 요구는 관철하기 어렵다고 보고 나자빠진 상태다. 대단히 정치적인 포기다.

호남 국회의원들에게 물어보자. 광주 동구는 ‘호남정치1번지’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만큼 상징성이 없었나? 5·18로 상징되는 금남로 광주정신, 그 금남로에서 김대중을 연호하며 정치적 결의를 다지고 한국 민주화를 이끌어냈던 정치동력과 자긍심이 ‘선거구 구획정리’틀에서는 무의미한 것인가? 단군 이래 가장 큰 문화프로젝트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품고 있는 광주 동구는 앞으로 국가예산이 가장 많이 와야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동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없어도 되는 것인가. ‘선거구 획정’은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던 바, 북구와 인구조정을 통해 동구 지역구를 살리는 방안을 왜 지역 국회의원들은 방관했을까. 광주의 심장과도 같은 광주 동구 주민들과 동구청이 정치권에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다.

필자는 ‘호남1번지’ 광주 동구의 존재가 정치적인 구획 정리로 훼손·방치되는 것을 염려한다. 호남1번지 동구는 경제, 정치, 유행, 문화 등 호남지역의 정서와 특성을 늘 앞장서 대변해 왔다. 삼국시대의 무진주로, 고려때부터는 광주로 불려온 곳으로 그 중심 터가 바로 동구다. 그래서 동구에는 광주읍성 터가 있다. 무등산 아래 삶의 터전을 닦기에 안성맞춤 이였던 동구 산수동, 지산동, 서석동, 광산동, 학동, 장동 일대에서 시작된 광주의 삶이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그런데 ‘호남정치1번지 동구’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상징 5·18이 오늘날 의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간과한 채, 오늘날 민주정부를 탄생시킨 결정적인 배경을 없애는 것은 현대사의 큰 오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동구 지역구를 없애는 것은 1980년 당시 최종 투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이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고, 수많은 집회가 이뤄졌던 도청앞 분수대, 계엄군과 밀고 밀리며 격전을 벌였던 금남로 등 그 피비린내 나는 5·18유적지가 생생히 살아있는 ‘한국민주주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 일이다.

전남지역 국회의원과 당직자 농어민들은 선거구 획정의 부당성을 알리며 선거구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는데, 광주는 ‘호남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이 강한 동구 선거구가 사라질 위기인데도 남의 일처럼 뒷짐만 지고 있다. 새정치연합 전남도당은 10개 지역위원회별로 ‘우리의 선거구는 우리의 힘으로 지킵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일제히 가두 서명운동에 돌입 농어민의 주권과 지역대표성을 훼손할 인구 기준 선거구 획정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지만 광주는 조용하다.

지역정치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강한 동구 선거구 폐지는 ‘호남정치 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광주의 상징적인 선거구가 사라지는 문제는 정치 측면을 떠나 행정·교육·예산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여러 현안에서도 불이익이 불가피해진다.

여·야는 광주 동구 선거구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문제를 놓고 오늘 최종 결론을 낸다고 한다. 과거 32만명이던 인구가 10만여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 상징과 자부심’을 버릴 수는 없다. 정부는 동구의 그 엄청난 문화역사유산을 보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이곳에 지었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지, 문화경제의 도시, 평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정치적인 지역구 유지다. 문화국가의 터미널이자 창조경제 발전소인 동구가 우리나라 대표 랜드마크로 부상하는데 필수조건이 지역구 유지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결정하니까~.

정치권에 당부한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 선거구 획정을 서둘러야 한다지만, 상징·역사성·정치적 자존심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광주 동구 지역구는 유지되어야 한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