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삶의 공간이 되다 7. 오스트리아 크렘스 역사·문화유산 활용 담배공장이 뮤지엄으로…수도원이 식당·감옥으로… 도나우강 바하우 계곡 풍광 ‘백미’…유네스코 ‘문화경관’ 지정 크렘스 중세시대 舊시가지 건물들 박물관·카페 등으로 재활용 유적 보존·활용 조화 이뤄 도심재생 성공…화이트와인도 유명 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

2015년 11월 12일(목) 19:12

중세시대 건물이 잘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스트리아 크렘스시의 구시가지에는 상점가와 쇼핑센터도 함께 조성돼 있어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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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유산이 넘쳐나는 유럽 선진국들의 도심재생사업 흐름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오래된 공간의 역사와 정신은 남겨 기록하되, 낡은 그곳을 재활용해 일상 속 터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지금의 삶 속에서 그 터를 누리며 과거를 추억하고 이어가는 것이 바로 유산 보존이자 활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생동감 넘치는 도심 재생으로 이어져 새로운 콘텐츠 생산과 관광 활성화까지 실현시킨다.
오스트리아 크렘스(Krems) 역시 그 대표적인 예이다. 크렘스의 15세기 낡은 건물은 카페테리아로 거듭났고, 1800년대 담배공장은 뮤지엄으로 변신해 여전히 도시 속에서 호흡 중이다. 사람들은 이 공간들 속에서 공연·전시를 보고 먹고 마시며 문화유산의 옛 흔적을 더듬고 향유한다.

현재 행사장이나 결혼식장으로 쓰이고 있는 과거 ‘운트’ 수도원 내부 모습.

◇ 도나우강 1천년 역사 품은 항구도시

일단 크렘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푸른 도나우강을 언급해야 한다. 도나우강이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에 도착하기 직전인 멜크에서 크렘스까지의 35㎞ 구간을 바하우(Wachau)라 부르는데, 그 구간은 2천850㎞ 길이인 다뉴브강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백미로 꼽혀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2000년 유네스코가 ‘바하우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지역이다. 해서 크렘스를 크렘스안데어도나우(Krems an der Donau)라고도 부른다. 오스트리아 북동부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는 항구도시로, 인구 2만5천여명 규모의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소도시이지만 대학교까지 있다.

995년에 왕실의 요새로 건설됐다는 기록문헌에 의해 크렘스의 역사는 1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폐를 주조하던 12세기 무렵에 자치시로 인가받았다. 1938년에는 슈타인안데어도나우와 마우테른 등의 인접 도시들을 합병했다.

중세의 요새 유적지로 슈타이너 토르, 풀페르투름, 고초부르크 등이 있다. 유명한 사적지로는 슈타트부르크(13세기)와 오스트리아 최고의 바로크 양식 교회인 장크트바이트 교구 교회(1616-30년 복구), 고딕 양식으로 된 2개의 교회가 있다.

이처럼 크렘스 일대에선 바로크와 고딕풍의 교회들이 눈에 띈다. 고풍스런 골목 주변을 메우고 있는 키 작은 파스텔톤의 건물들과 잘 어울린다. 좁은 골목과 작은 건물들 사이로 원주민과 관광객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스친다.

1970년 폐쇄돼 흉물로 존재했던 담배공장은 1995년 뮤지엄으로 조성돼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뮤지엄 내 카페 모습.

◇ 구시가지 보존·활용 조화로 도심 재생

크렘스는 크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엄격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관리된다. 10-12세기 중세시대 건물들이 남아있는 구시가지에는 1250년대 도미니카 수도원, 고딕식 성당과 바로크 성당, 1300년대 작은 기도소도 있다.

그러나 단순 보존만으로 관리되고 있진 않다. 유연성 있는 활용이 깃들어 있는 것. 실제로 구시가지 안뜰 예전 우체국으로 사용됐던 500년 된 집은 레스토랑과 호텔로 활용되고 있다. 또 15세기에 지어진 건물은 유리를 추가해 카페테리아로 운영되고 있다. 상점가와 쇼핑센터도 조성돼 있어 관광객들은 옛 것과 현대의 것을 넘나들며 향유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흉물로 존속했던 1850년대 가동됐던 담배공장은 현재 뮤지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담배공장은 1970년에 폐쇄됐다가 1995년 뮤지엄으로 조성됐다. 인근 양탄자 공장도 그대로 보존돼 관객을 맞고 있다.

특히 이 뮤지엄 옆에는 1840년부터 1880년까지 여자 수녀원이었던 현재의 감옥이 배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옛 문화유산 공간이 중범죄자 800여명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변신해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크렘스는 교도소가 지역과 떨어져 있으면 더 낙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구도심 중앙에 감옥과 뮤지엄을 나란히 배치하는 과감성을 보여 오히려 호응을 얻고 있다.

또 1787년 폐쇄된 ‘운트’라는 수도원은 과거에 유명한 와이너리였지만, 현재 바로크 회화가 남아있는 것이 인상적인 이벤트 행사장이나 결혼식장으로 쓰이고 있다. 옛 수도원을 헐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조성돼 이제는 낡디 낡은 담을 일부러 그대로 노출해 보여주는 건축미학을 고수, 관광객들의 향수를 자아내고 있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크렘스는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현재의 요구에 맞게 정책화해 성공적인 도심재생을 이끌어내고 있다.

스트리치크 크렘스 시 관계자는 “크렘스는 문화재보호법이 있어 구시가지 보호구역 안에 들어있는 건물은 칠, 천장 보수, 창을 만들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러나 오래된 건물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현대적 리모델링과 재활용에 대해선 유연성 있는 정책을 펼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우체국으로 쓰였던 500년 된 집은 현재 레스토랑과 호텔로 활용되고 있으며<사진 위>, 옛날 유명했던 성당은 최근 갤러리로 재단장돼 관객을 맞고 있다.

◇ 오스트리아 제1의 포도지 집산지 유명

크렘스의 또 다른 유명세는 유서 깊은 포도주 생산 도시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주변 지역에서 재배되는 포도를 원료로 한 오스트리아 제일의 포도주 집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크렘스는 청량하면서도 정갈한 맛과 매혹적인 향을 내는 화이트와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생산되는 와인의 80%가 화이트와인인데 수 십 종의 토착 포도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최근 가장 인기있는 대표 품종은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이다. 강가 구릉의 포도밭은 여름엔 미려한 경관을 선사하고, 가을에는 와인의 원료가 되는 탐스러운 열매를 제공한다. 해서 여행객들은 양지바른 땅을 뒤덮고 있는 포도넝쿨과 늠름하게 서 있는 고성, 붉은 지붕을 인 예쁜 집들이 조화를 이뤄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내는 크렘스를 찾아온다.

눈여겨볼 대목은 크렘스에 위치한 여러 와이너리들이 단순 와인생산공간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민을 비롯해 관광객들이 와인 제조 공정을 둘러보고, 와인의 역사를 들으며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와인의 역사를 들으면서 와인은 단순히 ‘마실 거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는 동시에 와인은 농부들의 삶과 문화이며, 땀과 노력의 결정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잠시 경험한 뒤 도나우 강이 내려다보이는 바하우 일대의 테라스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림책에 나올 듯한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문화유산의 흔적은 최고의 덤이다.
/오스트리아 크렘스=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