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와 친해지기 김혜민 변호사

2015년 11월 16일(월) 19:13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카이로스는 뒷머리는 대머리인데 앞으로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땋아 내린 파격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카이로스는 ‘기회’를 의미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마주치는 좋은 기회를 때로는 알고도 놓치는가 하면 미처 기회인 줄도 모르고 보내버리기도 한다. 황급히 그 때 그 사건이 기회임을 알고 뒤돌아보면 카이로스는 어느새 훌훌 날아 가버리고 만다. 손을 뻗어보지만 뒷머리가 시원한 카이로스(기회)는 뒤늦게 잡히는 것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왜 카이로스를 놓치고 마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진부한 말이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뜨면 출근 준비하고 출근해서는 일하느라 정신없다가 저녁시간 혹은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는 일도 다반사이고 그 외에도 자녀양육, 집안일, 모임 등으로 아무튼 종류는 다양하지만 정신없이 보내고 잠을 자면 다음날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의 반복이다. 또한 틈만 나면 울리는 핸드폰 알림, 뉴스, 이메일, 심지어 핸드폰이 울리지 않아도 궁금해서 열어볼 정도로 우리는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못한다. 그나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바로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진공 상태에서 스스로 고민하거나 가만히 생각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낯설기에 선택하는 킬링타임의 방식일 뿐이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더 잘하겠다고 야근을 며칠 하자, 하루는 상사가 그 한국인을 불러 심각한 표정으로 왜 근무시간 중에 일을 다 마치지 못하는지, 회사 시스템에 그 정도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바 있다. 몰입과 매몰은 천지차이인데 혹시 우리는 스스로 전자(몰입)라고 착각하며 후자(매몰)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매몰된 일상에서는 결코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없다. “어쩌라고? 일상이 이리 팍팍한데 어떻게 생각하는 대로 살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되돌아보자. 바쁘다는 이유로 그저 비효율적으로 일하기 바빴던 것은 아닌지. 바쁘다는 핑계로 그나마 남은 시간에는 무미건조하게 늘어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두 번째로, 같은 상황이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필자의 주변에는 교사 친구들, 교사인 지인들이 제법 있다. 그 중 어떤 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놀기만 해도 월급을 준다.”라며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그런 사람이라고 왜 힘들지 않겠느냐마는 자신의 일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반면 같은 교사여도 우리 사투리로 말하기를, 아이들이 ‘징하게’ 말 안 듣고 힘들다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해, 두해 살아가면서 깨닫게 된다. 현상은 받아들이는 자의 해석에 따라 달리 보일 뿐, 우리네 삶의 모든 일은 명암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러한 명암이 모여 삶의 희로애락을 만든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낼 수 있는지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해가 갈수록 누군가를 만나고 선택할 때면, 그 사람의 경력, 능력, 직업 등이 아니라 대화중에 묻어나오는 삶에 대한 건강한 자세, 긍정적으로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힘, 때론 조용히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차분함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능력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풍요롭고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가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때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같은 현상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건강검진만 받는가. 세모의 시기가 다가오니 마음검진도 해볼 일이다.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라 믿는다. 또한 그럴 때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는 카이로스와도 친해질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