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말은? 본사 사장 ssnam48@kjdaily.com

2015년 11월 25일(수) 19:41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 모든 언론과 정치계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며 이런저런 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이 죽음을 놓고 거의 비슷한 얘기를 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 구나’ 사람은 결국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기 전에 50년 살았든 100년 살았든 삶을 돌아보며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남기게 된다.

독자에게 묻고 싶다.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요?

최근 SNS에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말이라는 글이 널리 회자 되었다. 잡스는 성공의 절정을 맛보았지만 병상에 누워 삶을 돌아보니 그간 자랑스러워했던 세상의 인정과 부가 다가오는 죽음 앞에 희미해져 가고 의미가 없다는 것,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부가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 한 기억뿐이라는 것, 지금 삶의 어느 단계에 있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인생의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 그러니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을 ‘마지막 말’로 했다. 세계 최고의 성공,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잡스는 죽음 목전에서 ‘권력, 명성, 부는 죽을 때 절대 가져갈 수 없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진리를 말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느라 지금을 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 김수환 추기경도 잡스와 비슷한 마지막 말을 했다. 선종 당시 수녀들 의료진에게 한 마지막말은 ‘고맙다, 감사하다’였고 선종 며칠 전부터 병문안 온 지인들에게는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는 유언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말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는 ‘화해와 용서, 평화’였다. 2009년 8월 23일 이희호 여사는 국장 중 서울광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화해와 용서, 평화,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밝혔다.

이렇듯 ‘마지막 말’에는 그 사람의 염원이 담긴다.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언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과 비슷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를 발전시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을 말했다. DJ가 방법론을 이야기했다면 YS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이야기한 셈이다.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언 ‘통합과 화합’은 이 말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한국정치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 말을 붓글씨로 쓰면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 일선에서 필생 라이벌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경쟁하면서도 화합했다. 40대 기수론의 선두주자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후 대통령 후보, 당 대표 등을 놓고 경쟁했고, 87년 6월 항쟁 이후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후 각자 대권에 도전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도 하는 과오도 있었지만 군사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함께 만들고 신한민주당을 같이 창당하는 등 협력도 있었다.

계파와 파벌만 존재하지 중재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망각한 현 정치인들에게 김대중-김영삼 전직 대통령의 ‘통 큰 정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대통령은 경쟁에 취해 인간적 접촉이 없는 ‘갈등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자주 만나 토론하고 접촉하면 감정이 해소되면서 발전적 합의를 이룰 수 있지만, 불통으로 밀어붙이기와 발목잡기를 반복하면 갈등이 증폭되고 결국 가장 손해 보는 것은 국민이다. ‘분열의 정치’는 마침내 국민의 ‘정치 혐오’로 이어졌고, 여와 야를 막론한 ‘정치 위기’ 상황이 초래됐다. 그래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개혁이 화두가 됐고, 이 같은 정치 변화의 국민적 요구는 내년 총선에도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다.

YS가 남긴 과제는 어찌 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이다. 가중되는 서민 생활고, 무너지는 중산층, 고질적인 지역주의, 첨예한 이념 대립 등 지금 당면한 과제를 ‘통합과 화합’의 가치로 풀어가야 한다. 정치 전문가들은 YS가 정치권에 던진 ‘통합과 화합’이라는 화두는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한 의회주의의 본령 회복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성숙한 민주주의의 추구 △영·호남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통합의 정치 복원 등을 한국정치 과제로 제시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정치인의 수준, 실력이 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9단까지 기대 않는다. 여·야가 정책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타협, 합의, 조정 능력을 키워내는 심화과정과 학습이 필요해 보인다. 지역·이념·세대·빈부 갈등은 ‘화합·통합정치’ 아니면 풀길이 없다. 현 정치권은 3김 시대가 낳은 지역주의와 계파정치에서 기득권만 누렸지 스스로 성장을 포기했다.

누구나 마지막 말에는 ‘진심’과 ‘절실함’을 담는다. 정치인들은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묵념·추모하면서, 그의 마지막 말, ‘통합과 화합’을, 잘 통찰해보기 바란다. /ssnam48@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