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에서 조깅·시청 광장에선 음악축제…삶과 예술 공존 문화로 도시를 재생하다 8. 오스트리아 비엔나 역사·문화유산 활용 <상>

2015년 12월 08일(화) 18:53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는 비엔나(Vienna)는 도나우강 상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수도다. 현지 언어인 독일어로는 빈(Wien)이라 불린다.

비엔나는 1273년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1918년 카를 1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645년 동안 유럽의 절반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의 번영을 바탕으로 수 백 년에 걸쳐 유럽의 정치·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비엔나의 거리거리에는 ‘해가 지지 않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가 살던 곳이라는 자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건축물과 조각들이 넘쳐난다. 특히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스트라우스 등 음악 거장들과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등 미술계의 거장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향취가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유럽의 중세를 관통하고, 르네상스와 근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번영과 쇠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역사·문화·예술유산의 장인 셈이다. 요약컨대 인간의 모든 역사와 문화예술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세계 최대 문화복합체인 ‘뮤지엄 쿼터(Museums Quartier·엠큐)’ 전경. 엠큐는 300여년 전 황실의 마구간이었던 곳을 보존·확장한 예술공간으로, 지역민의 애정과 추진력으로 조성됐다.

◇ 슈테판대성당 등 곳곳이 역사·문화유산

사실 히틀러는 비엔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국경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조국보다 독일을 더 좋아했다. 게르만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그에게 비엔나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녹아있는, 그래서 지나치게 국제적인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히틀러가 그다지도 싫어했던 비엔나의 다양성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됐다. 실제로 고딕의 웅장함을 대표하는 슈테판 성당과 바로크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쉔브룬 궁전이 공존하고, 로코코와 아르누보가 조화로운 도시다.

특히 비엔나 제1구의 심장부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슈테판 대성당이다. ‘비엔나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 교회는 비엔나의 랜드마크이자 등대와 같다. 1천여년 전인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해 900년 전 고딕 양식으로 완성된 성당이다. 높이가 135m나 되는 이 곳에선 예배를 비롯해 콘서트 등 문화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슈테판대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졌던 곳이란 이유만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비엔나에선 슈테판성당의 첨탑을 보고 방향을 찾으면 된다. 케른트너 슈트라세(Karntner Street), 그라벤 슈트라세(Graben Street) 등 유명 쇼핑거리도 이 곳을 기준으로 해 사방으로 뻗어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인 호프부르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성당 중 하나인 카를 성당도 슈테판성당에서 도보로 5-10분 거리에 앉아있다.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과 시청, 국회의사당 등 주요 건물도 모두 링슈트라세 주위에 배치돼 도보만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눈여겨볼 점은 비엔나의 어느 곳에도 뼈대만 남은 건물이나 기둥은 없다는 것이다. 황제가 살던 궁전엔 대통령이 살고, 쉔브룬 궁전에도 사람들이 입주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비엔나의 남동쪽에 위치한 바로크양식의 벨베데레궁전은 새벽시간엔 시민들의 조깅장소가 된다. 공식적인 궁전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지만 비엔나 시민들은 입장료나 개장 시간 제한없이 공원을 이용하듯 벨베데레궁전을 아침 조깅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시민들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원작 등을 보유·전시하는 화려한 궁전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삶 속 힐링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엔나의 모든 문화유산은 박제돼 보존만 되는 게 아니라, 진행형의 삶터로 변모해있다. 오래된 역사·문화적 흔적들이 사람들과의 호흡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며 또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심장’으로 불리는 슈테판대성당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다. 비엔나의 랜드마크이자 등대와 같은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졌다. 작은 사진은 성당 내부.

◇ ‘엠큐’ 황실 마구간이 문화복합공간으로

이쯤 되면 비엔나가 지닌 문화자산이 부럽기 그지없다. 옛 선조들과 무궁무진한 자산 덕에 현대인들이 풍요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부러움이 뒤따르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비엔나가 문화예술관광의 융성지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이미 보유된 유산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비엔나 시민들의 노력과 땀이 스며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 최대 문화복합체인 ‘뮤지엄 쿼터(Museums Quartier·엠큐)’의 조성이다.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자연사 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과 미술박물관(Museum of Fine Arts) 맞은편에 위치한 엠큐는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전시회가 끊이지 않는 명실 공히 세계적 문화예술발전소다.

엠큐는 넓게 펼쳐진 광장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관(MUMOK),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레오폴드 미술관, 어린이 미술관, 댄스 지구, 빈 건축센터,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21지구(Qaurtier21) 등 다양한 문화시설로 구성돼 있다. 특히 레오폴드 미술관은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잡는 곳이기도 하다. 클림트와 에곤 쉴레 등 비엔나가 낳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클림프 그림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또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된 엠큐 광장은 24시간 개방돼 시민들의 놀이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공간은 새로 뚝딱 지어진 게 아니다. 18세기 황실의 마구간이었던 곳이다. 300년도 더 된 건물인 셈이다. 어떻게 300여년 전 마구간이었던 곳이 세계 최대 문화시설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요컨대, 지역민의 애정과 추진력이 주요했다.

1700년대 바로크시대 건물인 황실의 마구간은 1918년 1차 세계대전 후 황실시대의 종식과 함께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이후 종종 황국박람회 등의 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일부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5년 이 공간의 활용을 놓고 본격적인 논의가 펼쳐졌다. 당시 백화점이나 호텔, 관광마차들을 위한 마구간 조성 등의 방안이 속속 제안됐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너무 경제 지향적인 시설의 유치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역사유산을 지킬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으로 조성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주민들의 찬·반 갈등, 건축문제 등으로 우려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본논리에 치중한 센터보다는 문화예술적 공간을 조성하자는 지역민들의 일념이 결국 세계적인 문화복합공간의 탄생을 이끌었다.

엠큐는 철저하게 역사유산 보존과 현대적 시설의 조화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기존의 것은 모두 그대로 남기되 그 주변에 새로 짓는 건물들은 공존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됐다. 해서 엠큐는 1700년대 바로크시대 마구간 건물을 중심으로 해 18세기에 만들어진 입구 문 등의 중앙 돌출부, 19세기에 만든 건물, 최근 지은 뮤지엄 등을 오롯이 아우르고 있다.

매년 여름시즌 밤 비엔나 시청사 앞에서는 ‘필름페스티벌’이 열린다. 축제 내내 사람들은 맥주 등을 마시며 무료로 다양한 음악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 필름페스티벌 등 1년 내내 음악 향연

이처럼 비엔나에는 종교보다 더 깊고 뚜렷하게 문화예술의 전통이 새겨져있다. 스스로 ‘종교보다도 문화를 더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비엔나 사람들은 그 증거로 ‘오페라하우스가 슈테판성당보다 먼저 지어졌다’는 사실을 든다. 실제로 비엔나에는 50개의 공연장, 4개의 오페라극장, 150개 이상의 미술관과 갤러리 등이 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1년 내내 즐겨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문화중심도시로서의 자원이 풍부하다. 이 중에서도 비엔나의 예술적 주요 키워드는 ‘음악’이다. 음악의 도시라는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게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 쇤베르크가 비엔나에서 태어났으며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브람스, 말러와 같은 유명 작곡가의 비엔나와의 인연도 유명하다.

또 비엔나에서 한 해 동안 열리는 오페라 공연만 300개가량이 될 정도다. 해서 고전파·낭만파 음악의 거장들이 활동했던 주 무대였던 과거 영광을 밑거름 삼아 비엔나에선 1년 내내 음악축제가 열린다.

특히 여름시즌 밤 비엔나 시청사 앞에서 열리는 ‘뮤직 필름페스티벌’은 관광객과 마니아들이 들리는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대형 야외 스크린을 통해 유명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콘서트 등의 공연 실황 영상을 무료로 상영한다.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닌 시청사는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에 의해 완성된 신고딕 양식 건물로, 필름페스티벌 기간 동안 수많은 빛을 발하며 축제의 장을 연출한다. 대형스크린에서 오페라 공연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관객과 관광객들은 격식 없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친구, 연인들과 함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다. 고급문화로 여겨지는 오페라를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문턱 높은 공간이 아닌, 삶터 곳곳에서 1년 12달 예술이 흘러넘치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복합문화시설인 것이다.

이 연재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진은주 기자 jinsera@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