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잔혹한 낭만 ‘더 랍스터’와 사랑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

2015년 12월 10일(목) 18:51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 시, 소설, 영화들은 수없이 사랑을 노래해왔다. 연인과의 만남으로 인한 설렘, 기쁨, 행복을 비롯해 이별과 배신 등에 의한 아픔, 분노, 외로움까지도 사랑이 가지고 있는 넓은 스펙트럼이 파생한 감정들이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 ‘더 랍스터’는 SF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사회의 ‘억압’, ‘지배’, ‘체계’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음울한 사회비판 영화다.

가까운 미래, 도심에서 벗어난 어느 한적한 호텔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이 호텔은 솔로들이 짝을 찾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위 ‘커플 메이킹 호텔’이다. 주인공 데이비드 또한 아내에게 버림받아 이 호텔에 들어와 새로운 짝을 찾으려 노력한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솔로탈출’이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커플과 솔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구분되고 관리된다. 솔로는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강제적으로 호텔에 이송되고, 45일 내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호텔은 솔로를 감금하고 커플되기를 강제하는 감시와 처벌의 공간이다. 솔로들은 자위를 금지당하면서도 성적 능력을 시험받으며, 종업원들은 ‘솔로지옥 커플천국’을 세뇌시키기 위한 어설픈 연기를 펼치고, 커플이 된 참가자들은 연단에 올라 자랑스레 소감을 발표한다. 커플이 되지 않으면 동물로 변하는 이곳에서 솔로인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호텔 밖으로 탈주해 ‘외톨이’로 불리는 사회의 외부자로 살아가거나, 이들을 사냥해 기한을 연장하는 방법뿐이다.

사회학자 루만(N. Luhmann)은 사랑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소통 매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19세기의 ‘낭만적 사랑’은 파트너 선택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근거를 ‘사랑’에 둠으로써, 신분과 지위에 따른 파트너 선택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부담이 커지지만, 이를 주관적 확실성으로 전환시킨다. 다시 말해 낭만적 사랑은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인류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더 랍스터’의 호텔 또한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연애가 필요하다고 장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질서와 재생산을 위한 견고한 국가적 시스템이 놓여있다.

성별에 따라 같은 디자인의 옷이 제공되고 애매한 사이즈의 신발이 없을 뿐 아니라, 성적 취향 또한 양성애는 금지되는 호텔의 규범은 체계적 관리를 위한 행정의 건조한 사유를 보여준다. 이런 사유는 사랑에도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한다. 여기서는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과자를 좋아하는가, 코피를 자주 쏟는가 등 입증할 수 있는 공통분모만이 사랑의 예비조건이자 커플의 증거가 된다. 따라서 참가자들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반대로 공통점이 있는 상대방을 찾는데 몰두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데이비드는 많은 수의 외톨이를 잡아들여 호텔의 삶을 연장한 냉혈한 여성에게 자신도 그런 척 위장해 접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이 들통 나 생명을 위협 당하자 호텔 밖으로 도망친다.

호텔 바깥의 숲속에는 숨어사는 ‘외톨이’들은 사랑을 조롱하고 커플에 반대하며, 솔로를 긍정하는 반역자 무리다. 데이비드는 이들과 어울려 지배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게릴라전을 펼친다. 하지만 연애를 극단적으로 금지하는 이들 닫힌 조직 또한 또 다른 지배체계에 다름 아니다. 그는 자신처럼 근시를 갖고 있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둘은 남몰래 사회로 나가 커플로 등록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외톨이 대장이 여자의 눈을 아예 멀게 만들어버린다. 그들은 커플사회와 외톨이,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 돼버린다. 그녀와의 사랑을 증거 할 새로운 공통분모를 만드는 데 실패한 그는 급기야 최후의 방법으로 칼을 자기 눈앞에 갖다 댄다. 그의 떨리는 숨결과 주저하는 손은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