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강하지 않으면 축산업 미래 없다” 위기에 축산업 위생사육·고품질로 극복한다 <5·完>축산강국 덴마크의 비결은? 사육에서 판매까지 투명한 시스템으로 신뢰 유지 탄탄한 협동조합으로 효율 극대화·비용절감 한몫

2015년 12월 23일(수) 19:31

유럽 최대 도축공장인 대니시크라운 호센스 도축공장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를 수송하기 위해 대형 운송차량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덴마크는 우리나라의 경상도 남짓한 국토면적에 전체 인구가 560만명에 불과하다. 맑게 갠 날이 일년에 겨우 50여일 정도로 기후조건이 좋지 않고 땅도 그리 비옥하지 않으며 자원도 풍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덴마크는 UN이 실시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2012년, 201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다. 덴마크는 병원진료비가 평생 무료이며 교육비도 대학까지 공짜인데다 실직해도 2년 이상 일상생활이 보장될 정도의 실업수당이 나오는 사회복지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산업면에서도 덴마크는 세계 1등 부문이 많다. 어린이 완구의 대명사인 레고의 본고장이며 의약품과 음향기기도 세계 제일의 기술을 자랑하는 강소기업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세계 디자인사업을 선도하고 있다. 농업과 관련해서는 낙농과 축산분야의 전통강호다. 작은 나라 덴마크가 축산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과 근간을 살펴봤다.

대니시크라운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의 부위별 수출국가.

◇규모화된 축산협동조합으로 경쟁력 확보

덴마크 농가는 인구(약 560만명)보다 5배 이상 많은 돼지 3천만마리를 키운다. 돼지고기 90% 이상이 도축돼 130개국으로 수출된다.

비싼 인건비,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를 뚫고 덴마크가 축산강국으로 거듭난 데에는 규모화 된 축산협동조합이 첫 번째로 꼽힌다. 1940년대 90개에 달했던 덴마크 축산가공업체는 협동조합으로 뭉치면서 현재 9개로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규모화하는 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은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기준 덴마크 돼지 농가는 총 3천600곳으로 이들이 생산한 돼지는 3천10만마리에 달한다. 지난 1980년 덴마크 돼지 농가 6만9천여곳에서 1천320만마리의 돼지를 생산한 것과 비교해 농가는 10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반면, 생산성은 크게 증가했다.

특히, 덴마크 축산협동조합이자 세계 최대 육류 수출업체인 대니시크라운(Danish Crown)을 주축으로 한 축산 시스템은 생산-도축-가공-판매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였다. 대니시 크라운에 소속된 조합원은 덴마크 축산농가의 80%인 1만3천여 농가로 이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조합에 돼지와 소를 납품해야 한다.

덴마크 농식품위원회 관계자가 덴마크 양돈산업을 설명하고 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육류 유통시장의 90%를 장악한 대니시크라운은 주요 수출국에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한 해외 마케팅으로 육류와 가공식품을 13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발생한 연매출은 9조6천억원에 달한다.

도축과 가공, 판매가 원스톱으로 이뤄져 유통단계가 줄고 판매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이익은 농부에게 돌아갔다. 조합원은 고품질의 돼지를 생산하기 위해 계약을 성실히 이행했다.

에그네트 폴센(Agnete Poulsen) 대니시크라운 홍보 담당자는 “농부에게서 비싼 가격으로 돼지를 사들여서 소비자에게 비싼 가격으로 판매한다”면서 “농부가 강해야 회사의 경쟁력도 강화되기 때문에, 이익은 농부에게 돌려주는 것이 우리 회사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사육농가에 최대한의 이익 돌려준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수출국인 덴마크의 축산정책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사육농가에서부터 판매업자까지 전 과정을 공개하는 투명한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다 “농부가 강하지 않으면 축산업의 미래는 없다”라는 명제 아래 사육농가에게 최대한의 이익은 안겨주는 정책이 덴마크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고 있다.

덴마크 축산정책은 조합원들에게 가장 많은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강한 농부를 만들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비싸게 사서 비싸게 수출한다. “어떻게 하면 조합원들에게 많은 이득을 돌려줄까”가 역점 시책이다. 국내 정부 부처나 축산관련 업계에 시사하는 핵심 결론이다.

덴마크는 도축에서 수출까지 철저하게 동물복지를 지향한다. 맛있는 고기 생산을 위해 돼지의 스트레스를 철저하게 줄여준다. 도축장에서 도축시간이 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한다. 절대로 때리지도 않는다. 도축전까지 최대한 편안한 상태가 되도록 한다. 도축 직전 8마리씩 들어간 공간에서는 낯선 돼지들끼리 싸울 경우를 대비해 축구공을 넣어준다. 질식사 전까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해 최대의 맛있는 고기를 얻기 위한 방법이다.

돼지 사육과정도 자동화로 이뤄진다. 사료 제공에서 부터 오물 소거까지 전과정을 자동화시스템으로 가동하고 있다. 덕분에 가장 적은 인원으로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국가가 됐다.

대니시크라운 호센스 도축공장을 방문한 덴마크 축산업 기획취재단.

◇협동조합, 조합원이 확실한 주인

결론적으로 축산강국 덴마크를 만든 배경에는 협동조합이 자리하고 있다.

덴마크에서 맨 처음 낙농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은 1882년이다. 그 해 처음 가동된 협동조합의 낙농장은 한 농부의 작은 벽돌집 농가에 자리를 잡고 농민 26명이 소 300마리로 출발했다. 낙농협동조합은 1년만에 인근 지역에서 10개로 늘어났고, 1900년에는 덴마크 전역에 1천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1950년대가 되자 덴마크 우유 생산 농가의 약 90%가 낙농조합에 참여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돼지 도축능력을 자랑하는 대니시크라운의 호센스 도축·가공공장도 참여농부 8천200여명 모두 조합원이다. 이 곳은 덴마크 축산농가의 80%가 참여하는 유럽최대 축산협동조합으로 돼지고기 제품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축산농가와 도축·가공공장, 그리고 유통회사 모두가 협동조합으로 뭉친 것은 협동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각 단계별로 효율성을 높이며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다 줬다. ‘전체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전체를 위해’라는 협동조합의 구호는 신뢰를 바탕으로 힘을 발휘했다.

◇상호 신뢰가 선진축산의 원천

이처럼 협동조합을 근간으로 하는 덴마크 축산 전반의 시스템은 신뢰를 바탕으로 똘똘 뭉쳐있다.

도축·가공공장은 농부가 최상의 조건에서 돼지를 키웠으리라 믿고, 유통회사는 가공공장에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었으리라 의심치 않으며, 농부는 도축장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돼지를 구매할 것으로 철저히 믿는다. 여기에는 덴마크 사회를 종과 횡으로 촘촘하게 묶은 협동조합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축산 강국이 된 배경에 대해 덴마크 농식품위원회 홍보담당은 “사육농가와 정부, 양돈업체들간 무한신뢰를 바탕으로 논의하고 보고하며 개선점을 찾아 나가는 투명한 절차와 투명성(Transparent)이 경쟁력 강화의 근간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농장주도 참여하는 정책결정 과정

덴마크 농식품위원회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부나 EU를 대상으로 로비를 한다. 입법이나 타 국가와 FTA나 교류 협상 과정에 앞서 조합원들에게 보다 유리한 카드를 제시하고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다.

농식품위원회는 평소 조합원인 농부들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을 진행하며 의견을 수렴한다. 해외에 축산물을 수출할 때 규정 등이 불리하게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전 어드바이스를 하는 것도 주요한 임무이다.

조합의 형태로 운영되는 농식품위원회는 덴마크의 농부, 식품, 기술 등의 분야를 주관하는 사설기관이다. 하지만 조합원은 농식품위원회를 믿고 따르며 정부도 이 기관을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