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이라는 이름의 걸림돌 ‘맥베스’와 스캔들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 |
| 2015년 12월 24일(목) 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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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판단 능력은 신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서야 비로소 생긴 것이므로, 성경은 태초의 인간이 위반을 결심하기까지의 논리적 공백을 뱀이라는 유혹자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메운다.
뱀은 금기를 위반하면 죽는다던 신의 말이 거짓이며 오히려 신처럼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여자를 유혹하고, 유혹에 넘어간 여자는 남편 또한 선악과를 먹도록 부추긴다.
올해 다시 영화로 만들어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는 선악과 이야기와 동일한 구조로 시작한다.
스코틀랜드 글래미스 지역의 영주 맥베스는 반역 무리를 처단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동료 뱅쿼와 함께 고된 몸을 이끌고 왕을 만나러가는 길에 그는 세 명의 마녀를 만나 기묘한 예언을 듣는다. 그들은 맥베스를 글래미스의 영주, 코더의 영주, 스코틀랜드의 왕이라 칭하고, 뱅쿼에게는 왕이 되진 못하나 후손들이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한다.
맥베스에게 내려진 세 가지 예언은 사실과 가상을 교묘히 혼합해 그에게 주술적 힘을 행사한다.
①‘글래미스의 영주’는 사실이기에 예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사실을 알아맞힘으로써 다른 예언에 신빙성을 준다. ②전장에서 먼저 돌아온 지휘관에게 맥베스의 공로를 미리 전해들은 왕은 전쟁이 일어난 코더 지역의 영주 직위를 맥베스에게 내린다. 극을 관람하는 우리들은 그가 코더의 영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기 전에 마녀를 만났던 맥베스는 두 번째 예언이 실현됐다고 착각하게 된다. ③따라서 이제 그에게 마녀들의 세 번째 예언인 ‘스코틀랜드의 왕’은 가능한 미래로 여겨진다. 이런 까닭에 예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뱅쿼와 달리 맥베스의 마음은 탐욕과 양심이 뒤섞여 혼란스러워진다.
성경에서 뱀이 위반의 욕망을 촉발시키고, 여자가 구체적 실행으로 옮겼던 것처럼, 마녀에 의해 탐욕이 생겨난 맥베스는 부인의 강한 설득에 이끌려 왕을 살해하고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그토록 원하던 왕이 됐지만 맥베스는 왕좌를 지키기 위해 불안에 떤다. 왕이 되고자했던 자신의 욕망이 타인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철학자 지라르는 인간 욕망을 ‘스캔들’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적·사적 추문을 가리키는 ‘스캔들’은 헬라어 ‘스칸달론’을 어원으로 한다. ‘스칸달론’은 본래 나무토막을 가리키며, 함정이나 걸림돌을 의미한다. 이것의 동사형인 ‘스칸달리조’는 ‘걸려 넘어지다’는 뜻 외에도 ‘죄를 짓다’는 뜻으로도 사용되며, 성경에서는 ‘실족하다’로 번역돼 죄를 짓는 것 혹은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유혹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지라르에 따르면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해 생긴 것이다. 때문에 같은 욕망을 놓고 경쟁하는 상태인 ‘스캔들’은 피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미궁과도 같은 것이다.
왕권에 대한 맥베스의 욕망 또한 순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다. 뱅쿼와의 경쟁심을 조장하는 마녀의 교묘한 예언, 슬쩍슬쩍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인의 약은 설득, 언제라도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귀족들의 선망의 눈길이 그의 탐욕을 만들어낸다.
맥베스는 마녀들이 뱅쿼에게 했던 예언을 두려워해 그를 죽여 버리지만, 도리어 뱅쿼의 유령이 눈앞에 나타나 괴롭힌다. 공포정치가 계속될수록 이에 불만을 품는 귀족도 늘어만 간다.
급기야 맥베스에 의해 일가가 몰살당한 맥더프가 잉글랜드에 피신해 있던 왕자를 추대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하고, 맥베스는 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맥베스는 탐욕으로 살인을 거듭한 명백한 악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죽음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거대한 탐욕으로 빠져드는 그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