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시기…백암산에서 수행자들의 지혜를 구한다 장성 백양사 |
| 2016년 01월 07일(목)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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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말년에 부처님 발자취를 순례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펼쳤다.
아쇼카 순례단은 사찰순례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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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끝자락에서 ‘교수신문’이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일컫는다.
어지러운 세상, 어찌 해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바로잡히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군주를 염원하며 길을 떠난다.
백양사 순례에 앞서 가까운 시대에 있었던 선지식의 일화를 소개한다.
일제 강점기에 백양사에 만암스님(曼庵·1876-1946)이 주석하고 있었다. 스님은 일제강점기에 학교(광성의숙·심상학교)를 세워 승려는 물론 일반인에게 민족정기를 고취시켰다. 해방이후에는 일제잔재 청산, 민족정기 함양, 승풍진작 등 3대 목표를 내걸고 1947년 한국불교 최초로 고불총림을 결성했다.
만암스님이 백양사에 계셨을 때는 매우 궁핍했던 시기였다. 가난과 배고픔은 사찰이나 민가나 피해갈수 없었다. 스님들도 밥 대신 죽을 끓여 근근이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해, 흉년이 들어 모두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만암스님은 사하촌 사람들을 불러 백양사 쌍계루 앞에 보를 쌓도록 했다.
쌍계루는 백암산과 천진암 양쪽 계곡이 만나는 곳으로 수량이 많은 곳인데 일부러 보를 막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를 쌓은 불사에는 단서가 있었다. 마을에서 꼭 한 집에 한사람만 부르고, 빠지는 집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품삯은 곡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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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백양사는 흉년이 들면 쌍계루 앞 보를 허물었다가 마을사람들을 불러 다시 쌓기를 몇 차례 했다.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시기에 만암스님을 생각하며 백양사로 떠난다.
백양사는 1천400여 년 전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했다 전한다.
창건 당시는 백암사였다.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선사가 중창하면서 정토사로 이름을 바꿨고, 조선 선조 7년 환양선사가 백양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하얀 양’이란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환양선사가 산내 암자인 영천암에서 ‘금강경’법석을 열었는데, 흰 양이 내려와 법문을 들었다. 회향하던 날, 스님 꿈에 양이 나타나 ‘축생의 몸을 벗고 극락왕생한다’고 했다. 이후 사명을 백양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설화는 지난해 양의 해(乙未年)를 맞아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 있다.
창건당시 백양사는 쌍계루 뒤편 천진암 오르는 곳에 자리했다고 한다. 오늘의 가람은 쌍계루를 지나 영천암에서 흐르는 계곡을 건너야 한다. 그러나 계곡을 건너는데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만암스님이 쌍계루 앞 물을 막아 쌓았다는 보를 건너는 것이다. 둑에는 가지런히 돌덩이가 놓여있다. 이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쌍계루가 절경이다.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여기에서 바라보는 백암산 바위와 쌍계루는 가히 조선 팔경의 하나라고 할만하다.
근세 한국불교를 대표하던 서옹 큰 스님도 이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깨침을 얻었고, 오도송을 읊었다고 한다.
대웅전 초입에 자리한 사천왕문은 백양사를 대표하는 기도처이기도 하다. 백양사 율주 혜권스님이 30여년간 절 밖으로 한발짝도 나서지 않고 정진을 했다는 현대판 전설의 현장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서면 누구나 탄성을 지른다. 백암산의 하얀 바위와 대웅전이 절묘하다. 풍수에 문외한이라도 누구든지 대웅전 용마루와 백암산 바위의 환상적인 비율에 압도당하고 만다. 또한 대웅전 뒤로 펼쳐진 바위산은 우주의 중심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수미산을 옮겨 놓은듯 해 경외감마저 든다.
그러나 백양사 가람이 쌍계루 뒤쪽에서 현재자리로 옮겼을 당시 본당은 서편에 자리한 극락보전이었다. 만암스님이 백암산 바위에서 흐르는 기운을 막기위해 북쪽에 대웅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그뒤 대웅전 뒤편에 부처님진신사리탑을 조성했고, 고불선원까지 건립했다.
백양사에서 또하나 놓쳐서는 안될 전각을 꼽는다면 칠성각이다. 몇 해전에 만난 백양사 전 주지 진우스님에 따르면 ‘백양사는 칠성신앙의 근본도량’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석제환인은 조상 대대로 신앙하던 하늘 님으로 하늘의 상징은 곧 칠성이며, 불교의 제석천왕이 곧 환인이다”며 “칠성을 상징하는 태백은 백두에서 시작해 노령산맥 끝자락인 백양사로 떨어져, 예로부터 칠성신앙의 근본도량은 백양사”라고 주장했다.
그래서인지 백양사 칠성전은 큰 법당이었던 극락보전과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어 독특한 가람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칠성각에는 대부분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분의 부처님을 탱화로 그려 벽에 걸지만, 백양사에서는 칠성대군을 불상으로 조성해 놓아 특별함을 보인다.
백양사가 자리한 백암산에는 웅장한 산세만큼 수많은 절경이 자리해있다. 그 가운데 쌍계루를 비롯해 운문암, 영천암, 약사암, 감로천, 대웅전, 비자림, 비림, 용수탕, 천진암, 청류암, 봉황대 등 12곳을 백양사 12경이라 일컫는다.
특히 백암산 백학봉 아래에 자리한 운문선원은 ‘남 운문, 북 마하연’, 즉 북쪽에는 금강산 마하연 선방, 남쪽에는 백암산 운문선원이라해 수행하는데 으뜸으로 여긴다.
그래서 운문선원은 스님들 사이에도 안거때 한 철 지내는 것이 꿈이다. 한국불교 선종의 산실인 운문선원에는 고려 각진국사와 조선 진묵스님을 비롯해, 용성, 고암, 석전, 만암, 서옹스님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이 정진했다. 지금도 눈푸른 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지금은 동안거 철이어서 일반인은 운문암에 오를수 없다.
다만 오는 춘(春) 3월, 운문암에 오르길 권해본다. 이때쯤이면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 주위의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운문암에서 백양사 계곡을 내려다 보면 저절로 생명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옅은 녹색의 산뜻하고 밝은 파스텔로 그린 세상, 애써 다른 곳에서 극락을 찾지 않아도 된다.
병신년(丙申年) 새해에는 몸과 마음이 다 행복해지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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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일주문에서 경내까지 약 1.5㎞에 이르는 길은 한국인이 가장 걷고 싶은 길이다. 우리나라 도로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길이기도 하다. 양편으로 애기단풍과 갈참나무, 벚나무가 늘어서있는 이 길은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눈 터널을 이뤄 장관이다.
아름다운 길의 정점에 누각이 하나있다. 쌍계루(雙溪樓)이다. 백학이 날개를 편 듯 치솟은 백암산, 그 기운이 모인 곳에 자리해있어 일년 내내 언제 찾아도 좋다.
쌍계루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루(橋樓)라고 불렀고, 정도전이 ‘백암산정토사교루기’를 지었다.
쌍계루 명칭은 고려말 목은 이색이 쌍계루기를 지으면서 등장한다.
“누각의 좌우에서 두 갈래의 물(백양계곡과 천진암계곡)이 흘러와 하나로 합쳐진 곳에서 왼쪽물에 걸터 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 아래로 서로 비치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그후 홍수로 제방과 누각이 무너져 없어지자 고려 무왕 3년(1377년) 청수 스님이 중수했다.
이처럼 쌍계루의 경관은 조선에서도 으뜸이어서 글 좀 읽었다는 선비치고 쌍계루에 올라 시 한수 읊지 않은 이가 없다.
고려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는 물론 조선시대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청음 김상헌, 판서 오도일. 면앙전 송순, 노사 기정진. 약천 남구만, 월성 최익현 등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이 쌍계루에서 노래한 글은 지금까지 전해져 시와 기문이 126편, 누각에 걸린 시판만 300여수에 달한다.
백암산 쌍계루 전경. 글깨나 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시를 읊었고 시를 새겨 놨다. 쌍계루에 걸려있는 정몽주 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