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가르침 진은주 문화팀장

2016년 01월 18일(월) 18:27

신영복 교수가 대전교도소에서 복역할 때, 함께 생활하는 사람 중 한밤에 변소를 다녀오며 문을 쾅 닫는 이가 있었다. 자전거 튜브를 끼워 놓았는데도 소리가 요란해서 아침마다 다른 이들에게 핀잔을 받았다.

하루는 신 교수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데도 왜 그러십니까”라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가 축대 위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어요. 쪼그렸다 일어나면 완전히 마비가 돼서, 추운데 마비가 풀릴 때까지 있을 수가 없어서 늘 문을 놓치는 거예요.”

신 교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늘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하자 돌아온 말에 그는 또 한번 놀랐다. “어떻게 세세한 것까지 이해 받나요. 그냥 이렇게 살아야죠.”

이 말로 신 교수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좌우명도 생겼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다.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일화를 접한 뒤 ‘대인춘풍 지기추상’은 필자의 가슴에도 둥지를 틀어 좌우명이 됐다.

기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면서도 타인의 실수에 대해선 쉽게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이 그릇됨을 경계하기 위해선 나의 잘못을 철저히 분석하고 고치는 이른바 ‘내부 혁신’이 요구될 테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경청’과 숨겨진 사정을 관통해내는 ‘소통’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이 소중한 가치를 알려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이 열린 18일에도 그의 별세를 아쉬워하는 이들의 탄식이 잇따랐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수감생활을 겪은 뒤 그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계기로 그는 ‘시대의 지성인’으로 존경받아왔다. 그는 이 세상과 이별하면서도 ‘사람만이 온전한 희망’임을, 그리고 ‘너와 나, 함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갔다. 남을 포옹하고 온전한 나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어야 한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의 일침이 종일 내리는 눈발과 함께 가슴을 새하얗게 파고든다. 다시는 그의 새로운 글과 말을 접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