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자유의 숨결, 그 생명력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

2016년 01월 21일(목) 18:15

성경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흙으로 형상을 빚고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력을 갖게 했다고 전한다. 숨(호흡)은 생존을 위한 유기체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삶(생명)을 이르는 상징적 표현이면서, 기운, 영혼, 정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관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이런 ‘숨’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물음을 던진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생존본능에 충실한 자연적 존재이자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원형을 휴 글래스라는 실존인물에서 찾고 있다.

그는 본격적인 미서부 개척이 이뤄지기 이전,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대립이 한창이던 19세기 초의 사냥꾼이자 모험가로, 곰의 습격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고 동료들에게 버림받아 깊은 숲에 고립돼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3주 동안 300㎞가 넘는 야생을 헤치고 요새로 귀환해 전설로 남은 인물이다.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되 인디언원주민 아내와 아들을 설정해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글래스는 이주민들에게 침략당한 인디언 마을에서 아내를 잃고, 아들과 단둘이 목숨을 건진다.

살 곳을 잃어 곰사냥을 하는 이주민 사회로 들어간 글래스와 아들은 이주민도 원주민도 아닌 경계인으로 숨죽이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두려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공포를 혐오로 투사(projection)하곤 한다. 인디언의 습격이 거세질수록 피츠제럴드가 글래스의 혼혈아들에게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이유다.

‘레버넌트’에서 광활한 자연성과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인간의 정신성은 ‘숨’을 통해 매개된다.

영화 첫머리에서 글래스는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숨을 쉬려고 해야만 살 수 있으니 계속해서 숨을 쉬어라’고 속삭인다. 곰과 글래스가 벌인 죽음의 사투에서 카메라는 그들이 뱉어낸 입김으로 얼룩진다.

피츠제럴드는 부상당한 글래스의 숨구멍을 막아 죽이려 하고, 이를 저지하는 글래스의 아들을 살해한다. 글래스는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검푸른 입술 앞에서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도망간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검은 생을 반영하듯 담배연기를 뿜어낸다. 곰의 습격으로 훼손당한 목은 숨과 말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생명과 언어를 상실할 위험에서 그는 스스로 목에 화약을 터뜨려 구멍을 봉합한다.

한편 ‘레버넌트’는 생명과 죽음을 넘나들며 끝없이 변화·생성하는 대자연의 숨결 또한 보여준다. 물을 머금은 뿌연 하늘과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은 글래스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불에 달군 돌 위에서 눈이 증발하며 만들어낸 뜨거운 수증기는 그를 죽음에서 깨어나게도 했다.

생명이란 ‘살려고 애쓰는 특성을 가진 존재’, ‘죽음과 모험에 노출돼 있는 존재’라고 정의했던 철학자 요나스(H. Jonas)는 생명의 원리가 ‘자유’에 있다고 말했다. 자유를 인간의 가치로 보는 일반적 관점과 달리 그는 자유가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서 실현되는 가치라고 봤다.

자유개념의 적용범위를 인간외적 유기체로 확장한 요나스의 생각처럼 ‘레버넌트’는 자연과 인간을 교차하는 숨결을 좇으며 생명의 활동이자 자유의 확장으로서 인간존재를 보여준다.

영화가 ‘숨쉬기를 계속하라’는 속삭임으로 시작해 급기야 시각적 장면을 배제한 숨소리로 끝맺는 까닭이다.

/최송아(전남대철학연구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