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대란 외면하는 정부의 ‘자기 최면’ 김재정 지역사회부 차장

2016년 01월 24일(일) 17:22

중국 최초 소화전집인 소림(笑林)에 ‘일엽장목(一葉障目)’이란 말이 있다. 무엇에 정신을 빼앗겨 안목이 좁아진다는 말이다. 한 선비가 나뭇잎으로 얼굴을 가리면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 믿고 도둑질을 하다 잡혀 고초를 겪은 데서 비롯됐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난 13일 취임한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전국 시·도교육감들과 두 차례(18·21일) 만났다. 명목상 누리과정 문제 논의를 위해서다. 1·2차 회동은 예상(?)대로 소득없이 끝났다. 이 부총리는 ‘누리과정은 교육청 책임이니 교육감들이 예산을 편성하면 될 일’이라는 정부 입장만을 재확인했다.

부총리가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될 시·도교육감 총회에 ‘인사말’을 하기 위해 참석할 때부터 누리과정 반발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비판을 받았던 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공약으로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 유아교육’을 내걸었다. 새누리당 정책공약 자료집에 명시된 ‘적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정부는 언제부턴가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 책임이라는 입장을 들고 나왔다.

현행법상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유치원은 교육부 소관이다. 이를 모를 일 없는 정부는 끊임 없는 ‘여론전’을 통해 시·도교육청이 아이들을 볼모로 보육대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각인시키고 있다. 누리과정을 모르는 국민이라면 교육청의 잘못이라고 믿을 법 할, 그럴싸한 수치와 논리까지 동원하고 있다.

‘교육청에 예산 여력이 충분히 있다’는 정부의 주장대로 시·도교육청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모두 책임질 경우 일반 교육예산 삭감은 불가피하다. 시·도교육청은 지난해까지 정부 대신 누리과정 예산을 떠안아 이미 14조원의 빚더미에 올랐다. 정부만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흡사 정부가 ‘누리과정은 애초에 국가 책임 아니다’며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듯 하다.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는 결국 보육대란 전방위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엽장목’ 이야기 속 선비처럼 교육부와 정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