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한 세상, 통렬한 반성을 정겨울 문화체육부 기자

2016년 02월 03일(수) 19:28

찬 바람이 뼛속을 파고든다. 강추위 속에서도 그 뜨거웠던 오월의 함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게 하는 분을 최근 만났다. 바로 전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 선생이다.

민족시인 ‘김남주 평전’을 집필한 김 선생은 완도 출생으로, 오랜 기간 서울에서 거주하다 평전 출판기념회 및 저자 초청 강연 참석을 위해 광주로 잠시 내려왔다.

선생은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근무하며, 여러 날 동안 글을 쓰면서 평생 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30여명의 평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김남주 평전’은 그 25번째 평전인 것이다.

선생은 혹독한 시절 ‘마이웨이(My way)’를 걷던 김남주 시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조명하면서,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명명한 ‘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은 “죄는 ‘법적인 죄, 도덕적인 죄, 정치적인 죄, 형이상학적인 죄’로 나뉜다. 법적인 죄는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와 소수의 독일인 전범들, 정치적인 죄는 독일 국적 시민 전체, 도덕적인 죄는 나치 만행을 방관한 유럽인들, 형이상학적인 죄는 수용소 생존 유대인을 포함한 인류 전체를 뜻한다”고 말했다.

이 중 ‘형이상학적인 죄’는 다시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이다.

한국의 실정에 대입하자면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하나 둘 죽어갈 때 살아남은 죄,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의 거친 물결을 보고도 방관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가 바로 ‘죄’인 것이다.

광주 시민으로서 감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암흑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 학생들, 노동자들이 이유도 없이 왜 무참하게 학살 당했는지 되돌아보기도 했다. 1980년 5월 당시 이한열 열사, 윤상원 열사, 박승희 열사, 시인 김남주 등은 가장 앞장서서 저항했고, 오랜 나날 고문을 받고 옥살이를 하면서도 결코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날의 외침, 그 거친 숨소리를 잊고 사는 기성세대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살아남은 죄’를 짓고 살면서 현 정부, 세태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 다시 한 번 미래세대에게 ‘형이상학적인 죄’를 지을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